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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을 말한다/ 좌절…재기… 오뚝이 3인의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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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을 말한다/ 좌절…재기… 오뚝이 3인의 포부

입력
200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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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 새해가 밝았지만 경기 침체의 어두운 그림자는 여전히 모든 이들의 마음을 옥죄고 있다. 모두들 앞날에 대한 기대감 보다 장기 불황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숨 한번 내쉬고 주변을 돌아보면 좌절과 역경을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해가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평생 직장의 보호막을 걷고 창업 대열에 합류한 사오정, 좌절과 실패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 청년 실업을 극복한 사회 초년병 등…. 이들이 들려주는 ‘희망가’로 2005년 새해를 힘차게 열어보자.

■ 70여차례 도전끝 취직 성공 박광래씨

"70여 차례의 도전 끝에 시작한 일인 만큼 낯설고 힘들어도 부닥치며 배울 생각입니다."

지난해 9월 생명과학 벤처업체인 STC에 입사, 전략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광래(28)씨는 "그동안 취업을 위해 갈고닦은 실력을 맘껏 펼쳐보이겠다"며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라고 기염을 토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취업난은 결코 박씨를 비켜가지 않았다. 무려 70여 차례에 걸쳐 입사지원서를 썼지만 그때마다 낙방이었다. 희망 분야인 마케팅과 무관한 정보시스템학과를 졸업한 까닭에 박씨는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때 박씨 눈에 띈 것이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주관한 마케팅 공모전. 치밀하게 준비한 덕분에 박씨는 금상을 수상했고, 부상으로 지난해 초 3개월간 미국에서 마케팅 연수를 받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케팅 분야 취업을 시도했다. 취업 인터뷰 때마다 마케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국·영문 사업기획서 등을 직접 작성해 책자로 만들어 면접관들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긴장한 나머지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바람에 매번 탈락해야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면접 때 긴장감을 줄이기 위해 실전 같은 연습을 반복했다. 결국 STC 면접에서 자신감 넘치는 답변과 성실한 자료 준비로 박씨는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고, 핵심 부서인 전략기획팀에 배치됐다.

박씨는 신입사원으로서는 파격적으로 회사의 통합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비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지만 회사가 그만큼 절 믿고 인정해 준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아직 신입사원이라 회사 기여도가 미미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매출 창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실패의 좌절을 딛고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박씨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해결할수 없는 일이란 없다"며 "참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대기업 상무에서 라면집 주인 변신 김재형 씨

"여기 단무지 좀 더 주세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지하1층 일본 라면 전문점 ‘와가마마’. 구석 좌석에서 반찬을 더 달라는 손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재형(53) 사장이 단무지 접시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누비고 지나갔다. 요즘이야 익숙해진 몸놀림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계산대에서 나오지도 못했던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두달 전까지 180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린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의 상무였던 그에게 10평 남짓한 라면가게 주인 자리가 익숙할 리 없었다.

김 사장이 현대종합상사 홍콩법인에서 4년 동안 근무한 뒤 귀국한 것이 2년전. 김 사장은 회사가 의욕적으로 런칭한 외식·패션 사업을 총괄하는 국내사업본부장을 맡아 신바람 나게 일했다. 본부장 취임 후 첫 작업으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회전초밥집 ‘미요젠’을 오픈한 그는 직원들을 직접 자신이 선발하는 등 의욕에 찼다. 그러나 2003년 7월 회사가 은행관리에 들어가면서 자금이 막히고, 지난해 4월 새로 부임한 CEO마저 투자에 난색을 표하자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제든 회사에서 내 역할을 못하게 되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 사장은 지난해 10월1일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20일만에 ‘와가마마’를 오픈했다. 평소 아내에게 "회사를 관두면 라면집이나 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는 10년 전부터 출장차 일본을 오갈 때마다 유명 라면집을 찾아 다니며 재료와 요리법 등을 꼼꼼히 조사해왔다. 스타타워 지하아케이드에 가게를 내기로 하고 임대계약까지 마친 그는 매일 가게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가게 앞을 지나가는지 살펴보고 리포트를 썼다.

그 덕분에 라면가게는 평일 점심시간에만 평균 1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다.김씨는 "구멍가게에서 벌면 얼마나 벌겠느냐"면서도 "그래도 회사 다닐 때보다 수입이 좀 나은 것 같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김 사장은 올해 1월에 2호점, 4월께 3호점을 직영으로 낼 계획이다. 그는 "‘제 멋대로 구는’이란 뜻의 가게이름처럼 어찌 보면 내 멋대로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와가마마’를 최고의 일본 라면 전문점 브랜드로 키워내는 것이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 부도 딛고 무인경비업계 3위 우뚝 이강근 씨

"망해본 경험은 회사 몇 개를 갖고 있는 것보다 더 훌륭한 자산이 됐습니다.

무인 경비업체인 ㈜KSC네트워크 이강근(50) 대표는"옛날의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KSC네트워크는 최근 10년간 200~300개의 군소업체가 생겼다 사라질 정도로 경쟁이 심한 무인경비업계에서 1999년 창업 이후 급속히 성장, 현재 에스원, 캡스에 이어 업계 3위에 오른 업체. 경기 불황이 지속된 지난해에도 전국의 나이스 현금지급기 경비업무를 따내며 전년 대비 50%나 성장, 2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경희대 경영학과 졸업후 6년간 사무직에서 일하다 80년대 중반 보일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로서는 신기술을 적용한‘심야전력용 축열식 전기보일러’의 사업 전망이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사업 초반에는 수도권 지역의 수요 가운데 80%를 장악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압이 고르지 못한 탓에 몇 개월 만에 보일러들이 고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는 89년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는 부인에게 생활을 맡긴 뒤 1년 반 가량 한 사찰에서 밥상을 나르고 마당을 쓰는 생활을 했다. 혼자 하는 일을 찾겠다며 북 치고, 장구 치고 창을 하는 ‘1인 국악’을 연습했지만 국악이 생계대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 포기했다.

그러다 92년 지인의 권유로 방범업체 이사를 맡았고, 이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판단, 99년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이 대표는 보일러 사업 실패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기술 개발에 정성을 쏟았다. 그는 비밀번호 입력이 대세였던 잠금장치 해제 방식 시장에 비접촉식 카드(R/F카드)를 정착시켰고, 전화선을 끊어버리면 속수무책인 기존 시스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무선경비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같은 기술개발은 ㈜KSC가 우리은행, 기업은행, 외환은행, 금융결제원 등 주요 금융기관과 관공서 등의 경비를 맡으며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이 대표는"실패는 재기의 기반으로 삼으면 된다"며 "최악의 불경기지만‘역풍이 불 때는 노를 2~3배 더 많이 젓는다’는 심정으로 노력하면 재기의 기회가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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