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31일 갑신년 마지막 날까지도 추태를 보이며 밤 늦게까지 대치하다 김원기 국회의장의 최종 중재안으로 파국을 막을 수 있었다. 김 의장이 야당이 처리를 미뤄달라고 요구해온 과거사법을 직권으로 2월 임시국회로 연기하는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한나라당은 국회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풀었고 열린우리당은 의원총회에서 격렬한 토론을 거쳐 이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이날 밤 9시45분께 본회의를 개회, 파병연장안 찬반토론을 시작으로 안건을 처리했다. 한나라당이 의장석을 점거한 이후 시작된 여야의 본회의장 대치가 20여 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러나 새해를 불과 2시간여 남짓 남겨놓고 시작된 본회의는 19개 안건 처리에 시간이 모자라 결국 차수변경을 하며 새해 새벽까지 계속됐다.
김 의장은 이날 저녁 8시15분께 기자회견을 자청, "한나라당의 합의서 불이행이 잘못됐고 열린우리당이 직권상정 처리를 요청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최악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며 중재안을 내놓았다.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 등이 김 의장을 수 차례 찾아 요청하고, 여당 일부 중진 의원들의 건의도 잇따르자 이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하지만 천정배 원내대표 등 우리당 지도부와는 사전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김 의장의 발표 직후 여야는 긴급 의총을 열었다. 우리당은 김 의장의 조치에 불만스러운 기류가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 이를 수용했다. 특히 강경파 의원들은 "의장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했다"(유시민) "의회를 죽인 결과"(정봉주) "의장은 역사적으로 심판 받을 것"(임종인)이라고 반발했다. 지도부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그러나 중진들이 나서 "집권여당으로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설득하면서 대세가 수용 쪽으로 기울었다. 의총 후 일부 의원들은 눈물을 훔쳤고 천정배 원내대표는 무거운 표정으로 "표결하러 들어가자"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의총에서 박수로 수용을 결정했다. 박근혜 대표는 "국회의장이 처리하겠다고 한 마당에 더 이상 우리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날 처리키로 합의한 안건 중 예산안과 파병연장안 종합부동산세법은 자유 투표,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신문법은 반대 투표키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여야는 새벽부터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며 대치했다. 우리당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한 처리를 시도했고, 한나라당은 본회의장 점거를 통해 저지했다. 급기야 한나라당이 김 의장의 본회의장 진입을 물리적으로 막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오전 11시20분께 김원기 의장이 직권상정을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자 한나라당 의원 10여명이 제지에 나섰다. 40여명은 의장석을 둘러싸고 2차 방어선도 쳤다. 그러자 김 의장은 "부끄럽지 않느냐"며 길을 열 것을 요구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번 더 협상을 중재해 달라"며 제지했다. 우리당 의원들은 의석에 앉아 전날 합의문을 치켜들고 "약속을 지키자" "합의한대로 하라"고 합창을 했다. 10여분간의 실랑이 끝에 김 의장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날 협상이 깨진 데 대한 낯뜨거운 책임 떠넘기기도 치열했다. 우리당은 "한나라당이 협상을 깼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파탄의 원인은 여당"이라고 맞섰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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