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용 교수=큰 대륙의 귀퉁이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온 우리에게 100년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압적으로 체결된) 을사조약은 민족 최대의 수치이다. 그 연장선에서 36년간의 식민통치로 이어졌다.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보면 짧은 순간이니까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 온 우리의 능력을 믿는다. 60년 전 광복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신문지상에) 10번 이상 칼럼을 썼는데 늘 ‘기쁘면서 슬픈 날’이라고 표현했다. 해방은 기쁜 일이지만 우리 힘으로 쟁취 못한 것이 슬픈 것이다.
한일 국교정상화이후 이루어진 한일관계 40년은 의미가 매우 깊다. 이 기간에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민주화 규범의 내면화라는 점에서 미숙한 점이 아직도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게 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상호 협력하는 게 대세이고, 또 그것이 양국 공통의 이익이다. 어려움이 있어도 한일 관계를 양국의 공통 이익의 장으로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오늘 대담의 출발이다.
박철희 교수=오늘날 한일 관계가 이렇게 성숙해진 것을 보면 우리의 역량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100년 전, 그리고 60년 전 타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40년전 한일 국교정상화는 그래도 한국이 자주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비록 당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한국 산업화의 밑거름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100년 한일 관계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제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점이 왔다.
최 교수=한일간의 역사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이 중요한 화두이다. 나는 여기서 ’무라야마 모델’이란 것을 제시하고 싶다. 사회당위원장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담화를 냈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총리가 됐고 또다시 그 같은 인식을 토대로 한 담화를 발표했다. 이건 우리가 주장해서라기보다는 사회주의자인 무라야마총리의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대통령이 일본을 국빈방문했던 1998년의 일이다.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당시 역사문제와 관련된 우리 지도부의 질문에 나는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현실에서 볼 때 가장 양질의 역사관"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담화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 끼친 피해’라고 돼 있는데, 그건 막연하니까 일본이 가해자임을 명시해 그걸 문서화하자, 또 일본이 한국에 가한 식민통치에 대해 통절히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표현을 넣어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합의를 보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바로 98년에 나온 ‘한일 파트너십’의 중심내용이다. 요컨데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대만족은 아니지만 일본 국내정치의 다이내미즘이 우연히 만들어낸 무라야마 담화와 그것을 구체화한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두 나라 국민과 지도자가 존중하자는 것이다.
박 교수=한국인들은 한일간의 과거 문제를 대할 때면 매우 감정적이고, 부정적이며, 피해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제는 그런 방식의 태도는 극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역량도 그렇고, 국민 의식도 상당히 성숙해진 단계여서 더욱 그렇다. 나는 또 기본적으로 과거사 문제는 일본이 짊어지고 가야 할 일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 교수=양국간의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역사인식의 공유’란 말을 많이 하는데 여기서 역사 인식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확인된 사실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종군위안부의 국가개입이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일본 역사학자가 연구를 통해 이를 밝히니까 결국 인정했다. 나는 일본 사람들에게 ‘확인된 사실은 모래 위에 쓴 글이 아니다’라고 호소해 왔다. 이 호소는 평균적인 일본국민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확인된 사실은 공유할 수 있지만 해석이 같을 수는 없다. 말하고 싶은 것은 확인된 사실을 서로 공유하되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박 교수=최근 일본의 방위·안보적 차원의 변화와 관련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군사대국화와 군국주의화, 주로 이런 얘기들이다.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많이 나간 감이 있다. 일본은 나름대로 21세기형 국가전략을 다시 내놓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자주적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중국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미일 일변도로만 갈수는 없지만, 일본과의 전략적 대화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100년 전 을사보호 조약 당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교적으로 상당히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 교수=최근 일본의 변화는 긴 흐름으로 볼 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헌법에 대한 자의적인 수정과 해석을 통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또 보수·우경화라는 지적도 적절하지 않다. 일본은 원래 메이지(明治)이래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우익국가를 견지해왔다. 또 일본은 군사비(軍事費) 규모로 대국이 된지 오래다. 잠재적 군사대국이기도 하다. 일본의 지향점은 소위 보통국가인데 엄연한 현실로 다가 올 것이다. 그 말을 만든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현 민주당 부대표)는 "역사를 보라. 경제대국은 군사대국이 됐다. 역사의 방향 대로 일본도 가자"고 주장했다. 우리는 단순히 이를 군국주의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안보·군사 레벨에서 고차원, 고난도의 전략적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우리가 일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은 두가지 점에서 초래된다고 본다. 하나는 우리가 일본을 보는 눈은 ‘수입된 눈’이다. 한국적 일본관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군국주의는 중국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일본 혁신그룹이나 좌파 진영의 얘기를 그대로 들여오는 게 많다. 이런 개념들은 우리의 구미에 맞고,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일본의 실체와 변화하고 있는 일본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또 하나 일본에 대한 과거지향적시각이다. 일본은 최근 새로운 보수 양당 체제 아래서 보통국가로 가고 있는데 그건 이미 시간의 문제이지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최 교수=일본인의 70% 전후는 보수세력이다.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이들이고, 이들의 힘이 일본의 현실이다. 나머지 30% 전후는 극좌도 있고 코스모폴리탄도 있고 정말 다양하다. 우리는 일본을 비판할 때 가끔 일본 좌익의 언어를 사용하는 데 보수세력들은 이에 대해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30% 중의 미래지향적 시민세력과 70% 중의 건전 보수세력을 합치면 역시 60~70% 정도는 될 것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 정책은 이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주장이 적어도 이 세력에게는 거부 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박 교수=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일 양국간의 인식의 갭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북한 다시 보기를 통해 ‘두들기기’를 계속할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북한의 위협을 과대 평가하고, 북한을 신뢰 할 수 없는 국가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북한을 어떻게든 끌고 가야 일본에 이익이 된다고 설득해야 한다.
최 교수=최근 북한은 납치문제와 관련해서 오판의 연속이다. 이 때문에 평균적 일본 국민의 대북 인식은 최악이다. 그러나 나는 북한과 일본이 이 고비를 넘어서 결국 교섭을 시작할 것으로 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郞) 총리의 3대 외교과제가 러시아의 북방영토반환, 유엔 상임이사국진출, 북일정상화인데 이중 북일정상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이것은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화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양국의 정상화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
박 교수=나는 미래의 한일관계를 낙관적으로 본다. 양국간의 교류가 역삼각형 구조에서 삼각형 구조로 가고 있다. 최근에는 ‘욘사마 열풍’ 등 한류에 힙입어 교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양국 젊은 세대는 서로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현재 매달 양국에서 3,383편의 항공기가 이착륙하고 있다. 하루에 비행기 100편 이상이 양국을 왕래한다는 예기이다. 문제는 엘리트 레벨에서 방향성을 제대로 못 잡아 주는 것이다.
향후 한일관계를 발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문화의 시대니까 문화강국다운 면모도 갖춰야 할 것이다.
최 교수=끝으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까운 장래에 외교안보수준에서의 한중일 협력체제의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우선 경제와 문화영역에서 한중일 3국이 공동체에 가까운 접근과 교류를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영역에서는 한국이 중일관계의 긴장을 조정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한중일 동북아 문화센터를 한국에 건립하는 것이 새해 나의 소망이고, 꼭 실천하고 싶은 과제이다.
정리=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최상용(崔相龍)/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42년 경북 경주 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 취득. 저서는 ‘중용의 정치’(나남, 2004년)등 다수. 고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국평화학회장, 주일 한국대사 등 역임
■박철희(朴喆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963년 충북 충주 생.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저서는 ‘일본 국회의원이 만들어지는 법’(일본 문예춘추, 2000년) 등.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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