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9일 마침내 쓰나미 피해에 대해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가공할 해일이 서부와 남부 아시아 국가들을 덮친 지 72시간이 지난 뒤였다. 부시 대통령은 26일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짤막한 코멘트를 한 뒤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부시 대통령을 다시 정장 차림으로 불러낸 것은 그의 ‘부재’를 의아스럽게 여기는 세계의 시선과 미 언론의 따가운 질책이었다. 대통령의 휴가에 관대한 미국의 언론도 이번엔 예외였다. 그들은 어떤 정도의 재앙이 있어야 덤불을 치우고 자전거를 타는 대통령의 휴가 일정을 중단시킬 수 있을까 하고 부시의 무관심을 꼬집었다.
백악관은 반박했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부시 대통령은 인도적 참사가 나면 TV에 얼굴부터 내밀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그러나 지난 대선 때 허리케인이 강타한 플로리다로 날아가 팔을 걷어붙이고 물병을 날랐던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해명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9·11 때 전세계로부터 밀려든 구호의 손길을 기억하는 일반 시민들은 달랐다. 그들은 직장을 제쳐두고 피해지로 떠났다. 한 자선단체의 온라인 성금모금엔 순식간에 100만 달러가 쌓였다. "지난해 전세계 구호자금의 40%가 미국의 돈"이라며 ‘인색한 미국론’을 방어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은 그런 열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세계를 향해 미국 편에 서든지, 테러리스트 편에 서든지를 요구했던 부시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9·11 때 보다 적어도 30배나 큰 재앙을 입은 다른 국가 국민들에게 먼저 다가갔더라면. 부시 대통령은 온정과 인류애를 뒷전에 미뤄둔 탓에 세계의 반감을 누그러뜨릴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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