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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5) 환경생태농업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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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5) 환경생태농업이 대안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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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환경농업마을.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몇몇 독특한 시설들이 눈에 띈다. 황토 건물로 아담하게 지은 환경교육관과 농업생활유물관, 마을 공동 찜질방, 풍력발전기 등이 넉넉한 마을의 인심을 보여주는 듯하다.‘하늘공경’ ‘땅사랑’ 장승이 버티고 서있는 환경농업교육관은 바깥 날씨를 비웃듯 100여명의 수강생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넘쳤다.전남 여수와 충북 청원에서 견학 온 농민, 공무원들이 방석 하나로 냉기를 녹이며 주형로(46) 환경농업마을 대표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 대표가 "쌀 개방으로 외국쌀이 밀려올 현실에서 대안은 무농약 유기농업"이라고 말하자 수강생들은 "우리도 환경농업으로 외국쌀과 한번 맞서보자"며 전의를 불태우는 것 같았다.

겨울철 문당리 벌판은 오리집도 비어있어 황량해 보이지만 막상 마을 전체는 이렇게 환경농업을 배우려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농민들로 북적거린다. 한 달 전 방문예약을 받는데 내년 1월까지도 예약이 밀려있다.

문당리는 국내 환경농업의 메카다. 1993년 전국에서 처음 도입한 오리농법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지만, 오리농법이란 논의 제초작업에 인력과 농약을 쓰는 대신 오리를 풀어놓아 해충을 잡아먹고 잡초도 뽑아먹도록 하고 오리의 배설물도 거름으로 쓰는 일석삼조의 친환경농법을 말한다. 주 대표가 오리농법 시험재배에 성공한 후 매년 참여 농가가 불어나 지금은 홍성군 전체로 확산됐다. 올해 군내 700여 농가가 240만평을 오리농법으로 재배했다.

주 대표는 초기부터 농민들의 벼를 전량 수매하도록 지역농협과 계약재배를 추진했다.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되면서 농민들은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오리농법으로 생산한 벼는 9만5,400여 가마로 전량 홍동농협에 40㎏ 1가마당 8만4,000원에 넘겼다. 정부수매가 1등급 5만8,020원보다 45% 가량 비싼 값이다. 이 지역 농가들이 오리농법으로 벌어들인 금액이 83억3,400여만원에 이른다.

농협은 수매한 벼를 이유식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에 65%를 공급하고 나머지는 ‘오리농 쌀’상표로 일반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홍동농협 주홍진(42) 대리는 "무농약 유기농 쌀이라는 소비자의 믿음이 확고하면 다소 비싼 가격은 큰 문제가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리농법이 자리를 잡으면서 문당리 주민들은 도시인들과 함께 하는 농업도 추진했다. 도시인에게 ‘오리 보내주기 운동’을 전개하고 이들을 초청해 논에 오리 넣기 행사도 가졌다. 보통 새끼오리 10마리(1만8,000원) 값을 보내오면 농민들은 이 돈으로 오리를 사고 가을에 오리 값에 상응하는 쌀을 보내준다. 이렇게 하자 매년 학생과 일반인 등 1만 5,000여명이 문당리를 찾아와 농촌 생활과 친환경농업을 체험하고 있다.

주민들은 또 97년부터는 벼를 수매하면서 가마 당 3,000~1만 원 정도를 환경기금으로 모았다. 3년만에 4,500만원을 모아 환경교육관 건립 부지를 마련했다. 오리농법으로 받은 각종 상금도 기금에 넣어 찜질방과 마을 정미소를 세웠다. 지금 마을 공동 소유 땅과 건물 등 자산이 13억원에 이른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지은 유기농 쌀을 지역 5개 초등학교에 급식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교육청 지원 쌀 구입비 중 모자라는 2,000만원은 직접 부담한다. 주 대표는 "쌀은 그 나라의 국민성이다. 아이들이 우리 쌀에 입맛을 들이면 나중에 어떤 쌀이 들어와도 입맛에 맞지 않아 못 먹을 것"이라며 급식 지원의 의미를 말했다.

이제 문당마을은 오리농법에 이어 유기농 축산을 추진하고 있다. 유기농 벼에서 나오는 볏짚을 소에게 먹이고 소에서 나온 거름을 다시 논에 사용하는 생태순환농업이다. 현재 25가구에서 가구당 10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다. 생태순환농업이야말로 우리 농업의 궁극적인 방향이라고 이 마을 주민들은 확신하고 있다.

주 대표는 "정부가 쌀 개방에 대응한다고 단기적으로 농촌에 자금을 퍼붓겠다는 식의 발상만으로는 안된다"며 "국내 쌀이 경쟁력을 갖도록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당리 환경농업마을의 성공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농촌은 개방의 파고를 넘어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성= 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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