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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아 지진해일 대재앙/ 이번엔 스리랑카 의료지원 김희정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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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아 지진해일 대재앙/ 이번엔 스리랑카 의료지원 김희정 간호사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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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현장에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때면 샤워를 할 수 있고 TV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으로 다가오겠죠."국제구호단체 굿 네이버스의 의료지원팀 김희정(35·여) 간호사는 30일 스리랑카로 봉사활동을 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1994년 르완다 내전을 시작으로 99년 유고 코소보 내전, 99년 터키 대지진, 2001년 인도 대지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 등 10년간 각국을 찾아 다닌 ‘한국의 나이팅게일’. 직장을 여러 차례 그만두면서까지 짧게는 2주, 길게는 3개월 동안 고통에 절규하는 이들을 보살펴 왔다. 서울 모 병원에 재직하고 있는 김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94년부터 의료봉사활동에 나섰고 최근에는 체계적인 구호활동을 위해 연세대 사회복지관련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이번에도 휴가를 쪼개 스리랑카로 향했다. 김씨는 "봉사는 자신에게 가하는 채찍일 뿐 자랑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봉사활동에 뛰어든 계기는 94년 케냐 오지를 다녀오면서부터. 다리가 곪아 터졌는데도 맨발로 뛰놀거나 영양실조에 걸려 갈비뼈가 드러난 꼬마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르완다 내전 의료봉사를 자원, 짐을 쌌다. "집안 반대도 심했고 망설임도 많았죠. 하지만 고통 받는 이들이 눈에 밟혀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에게 전쟁은 참혹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르완다 고마 지역 난민촌에서는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야전병원에서 콜레라 이질까지 창궐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 나갔다.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인들의 인종청소를 피해 국경을 넘은 알바니아인들 대부분이 온몸에 고문자국이 선명했다. 방사능 물질 유출로 소아암에 걸린 이라크 아이들의 휑한 눈동자를 보면서도 항암제가 부족해 어쩔 도리가 없었을 땐 심한 좌절감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김씨는 코소보 난민촌에서 알바니아인들과 조국을 찾은 해방감을 함께 느끼며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계에서 일하다 보면 ‘보람’이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껴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

대규모 지진 이후에도 여진 때문에 수개월을 텐트 안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던 터키와 인도 대지진 활동 당시에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새삼 느꼈다고 했다. 그는 "시체더미도 끔찍했지만 여진이 발생할 때면 2~3층에서 뛰어내려 다리 골절상을 입은 주민들이 셀 수 없었다"며 "환자 대부분은 공포감 때문에 신경안정제를 맞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고 회상했다.

"한창 바쁜 시기인데 제가 빠져 힘들어 할 직장동료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이번에는 식량과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가는 이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세계로 눈을 돌려 고통 받는 이국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었으면 좋겠구요."

굿 네이버스는 현재 스리랑카 지원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도 모집 중이다. (02)338-1124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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