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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통합의 리더십을 위하여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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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적을 만들고, 귀는 친구를 만든다’는 고금의 격언에 비춰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친구보다 적을 훨씬 많이 만든 것 같다.노 대통령은 올 봄 "합리적 보수니, 따뜻한 보수니,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놓아도 보수는 결국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탄핵결정 기각 때는 "부활은 예수님만 하시는 건데 한국 대통령도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또 "철저한 충성과 보상관계를 토대로 주종관계를 맺은 뒤 물질적·명예적 보상을 주고받으며 서로 갈라먹는 폐쇄적 특권적 ‘조폭문화’를 청산해야 한다"고 날을 세우더니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간다고 하면 낡은 유물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국가보안법을 한칼에 단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인식은 그의 말대로 ‘(재벌 족벌언론 학력엘리트 강남부호 등 기득권 세력에서) 날아오는 돌팔매질을 맞고 막고 피하느라고 정신없던 시절’에 형성된 적의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특히 장기 경기침체의 핵심요인은 사회 전반의 양극화인데도 그 한 축을 책임져야할 대기업이 앞장서 ‘위기론’을 부추긴다고 목소리를 높일 땐 재계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간극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노 대통령의 격정적 언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두달여 만에 세계를 한바퀴 돈 학습의 결과로 "기업이, 그리고 상품이 나라이자 국가대표"라는 표현이 입에 익은 것은 그렇다 치자. 보다 눈여겨볼 변화의 단초는 "관용이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단순함을 넘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세상의 가치와 원리가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동시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13일, 민주평통 운영위)이라는 발언이다.

이후 노 대통령은 "정치의 대립각에서 한발 물러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대통령이 혼자 했다고 말할 것이 별로 없고 함께 서로 기여하면서 한 것을 얘기하는 게 변화라면 변화""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너무 무리하거나 조급하게 굴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는 말을 쏟아냈다.

물론 아직도 이런 발언의 진정성에 별로 무게를 두지 않는 시선들이 많다. 친노 세력이 대부분인 여당 강경파들은 국가보안법 등의 연내 처리를 요구하며 악다구니를 쓰고 있고, 먹고사는 문제가 내년 상반기에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는 판에 대통령의 말이 좀 바뀐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또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있다.

그래도 일년 동안 참으로 먼 길을 달려왔다는 회한과, 앞으로 더욱 힘든 길을 가야한다는 두려움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국가 최고지도자가 리더십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깊게 성찰하며 미래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찾는 것은 당연하면서 꼭 필요한 일이다. 좀 희화적이긴 하지만 한두 달 전까지 20%대에 머물던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민심의 좌표로 불리는 40대층의 호의적 반응에 힘입어 최근 30%대 중반까지 상승했다는 것도 대통령 주변에서 풍기던 갈등과 반목의 기류가 흐려졌음을 뜻하는 것일 게다.

노 대통령이 관용이란 표현에 애착을 가지면서 부쩍 강조하는 것은 경제문제에 대한 재계의 책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진 사람들의 관심이다. 때마침 재계에서도 정부의 시장친화적 정책을 이끌어내려면 지나친 패배주의나 비관론을 경계해야 하며 사회지도층의 자성도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18억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이 종합부동산세제 도입으로 세금이 60만원 올라간다고 아우성칠 수 있느냐. 가진 자들도, 우측에 있는 자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대표적 예다.

새해의 길목에 놓여진 삶의 지표를 보면서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동벌이(黨同伐異)’문화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다양성과 통합의 리더십을 뿌리내리는 일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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