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의 야생동물을 구조해서 풀어 줄 때 말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을 느낍니다. 야생동물도 이제 ‘우리’라고 생각해야 할 시대가 됐습니다. 녀석들이 잘 살 수 없는 세상은 인간도 살기 어렵습니다."김수재(51)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이사는 연말연시가 더 바쁘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 때문이다. 12월 들어 충북 증평의 집에서 잔 날이 하루밖에 없을 만큼 전국 곳곳의 밀렵꾼들을 쫓아다니며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눈밭에 찍힌 동물 발자국을 추척하기 쉬워 밀렵꾼들이 기승을 부린다. 김씨는 지역 동물보호협회 회원들과 함께 밀렵꾼을 적발해 현장에서 자술서를 받아내고 검찰에 고발한다. 그러나 밀렵꾼들이 위협 사격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최근 ‘황금박쥐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었다. 충주 환경운동연합 박일선 정책실장 등과 함께 지난 6일 충주호변 동굴에서 황금박쥐 서식지를 발견한 데 이어 15일 ‘황금박쥐 지킴이’ 발족식을 갖고 동굴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기 때문이다.
"황금박쥐는 세계적 희귀종이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 제1호입니다. 황금박쥐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인간은 녀석들의 보금자리를 보호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돌아가며 동굴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밤샘근무를 하고 있지요. 동굴 속에는 8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어요. 1998년 전남 함평에서 수십 마리가 발견된 이후 집단 서식지가 발견된 것은 처음입니다. 들쥐를 잡아먹기 때문에 사람한테도 이로운 녀석들이지요. 그런데 인기척을 느끼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습니다. 특히 동굴 위를 관통하는 용두-금가 간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지요."
정화조와 물탱크 판매업을 하는 김씨는 96년 고향 선배 소개로 협회 활동을 시작했다. 자비 들여가며 순전히 좋아서 하는 일이다. 10 년 가까이 현장을 누비고 있다.
"2000년이었어요. 충북 괴산에서 너구리가 주둥이 아래와 목, 몸통이 올무 3개에 칭칭 감긴 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어릴 때 걸려서 2년 정도 그러고 돌아다닌 것 같았습니다. 철사가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끔찍했지요. 사무실로 데려가 열흘간 치료해 주고 다시 산에 풀어 주었어요. 너구리 눈이 빨개졌고 저도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김 이사가 그나마 희망을 거는 것은 내년 2월부터 강력한 야생동식물보호법이 시행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자연환경보전법에서는 멧돼지나 고라니 한 마리 잡다 걸려 보았자 벌금 100만~150만 원 내고 끝입니다. 건강원에 마리당 200만~250만 원에 팔 수 있으니 근절이 되겠습니까? 4~5년 전에는 산에 토끼도 많았고 대전 쪽 밀렵꾼이 개오주(호랑이 새끼)를 잡았다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밀렵꾼은 사냥 허가지역을 벗어나 인근을 배회하다 야간에 활동합니다. 다들 돈벌이로 하는 것이지요. 맹목적인 보신주의자들도 문제입니다."
김씨는 30일 인터뷰 끝무렵에 밀렵꾼이 떴다는 신고가 들어온 강원 영월 법흥사로 급히 떠났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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