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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술자리일수록 더 예를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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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술자리일수록 더 예를 갖춰야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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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차가 지날 적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던 신작로 한쪽 양조장 술독에는 어른들이 돈을 내고 소금 안주에 양껏 퍼 마실 수 있는 바가지가 놓여 있었다.학교가 파할 때 우리는 그곳을 기웃거렸고, 몰래 들이키곤 했는데 그때의 짜릿한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떠오른다.혈기왕성하던 30대 시절, 나는 경기 성남에 올라와 취직을 하려고 집안 아저씨를 찾았다.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따르던 반가운 사이인지라 우리는 마주앉아 정담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대뜸 내게 하는 말이 "너 술 안 마셔 봤구나! 주법도 모르는 것을 보니!" 하시며 꾸짖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누구라도 술을 따를 때는 오른손으로 술병을 들고 왼손으로 받혀 공손한 자세로 따라야 한다고 했다. 술잔을 받을 때도 한 손으로 받지 말고 정중한 예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동작 하나가 뭐가 대수냐고 할지 몰라도 정장을 한 것과 내복만 걸친 차이라 했다. 상대에게 예를 갖춰 따르는 술잔을 받는 기분은 다른 것이다. 왜 우리 선인들이 술자리일수록 더 예를 챙기려 했는지 그 지혜를 알 것 같다.

지금도 술자리에 앉게 되면 그 사람의 술잔 따르는 모습을 유심히 보게 된다. 정중하게 두 손으로 따르는 모습은 어딘가 품위와 운치가 있고,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흐뭇하다.

얼마 전 나는 가족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생질과 함께 하게 되었다. 모처럼만에 만난 나와의 술자리인지라 내게 자꾸 브라보를 하자며 잔을 높이 들었다. 웃어야 할지…. 나는 그 나이 때 아저씨로부터 배운 주법을 떠올리며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 그 아이도 나처럼 오래오래 기억하며 품위 있는 술자리를 스스로 지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연말연시를 맞아 술자리가 많을 때다. 즐거운 술자리를 위해서는 과음을 삼가고, 술자리 예절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 아닐까! 아저씨의 꾸짖음이 어제처럼 선하다.

한휴식·경기 수원시 권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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