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불평등은 아시아 최고 수준입니다. 경제위기 이후 계급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 서울의 경우 특히 공간적 불평등이 눈에 띄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계급문제를 탐색해온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50) 교수가 1997, 98년 외환위기 이후의 계급 변화와 사회 불평등 문제에 주목한 글들을 모아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을유문화사 발행)을 냈다.‘20대 80’의 사회로 이야기되는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한국사회의 계급 구조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경제위기로 계급이나 소득·자산 불평등 구조는 어떻게 바뀌는지 등을 다룬 논문 8편을 모았다. 한국사회가 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못지않은 극심한 불황을 겪는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앞날을 가늠하는 데도 적실한 분석이다.
신 교수는 노동부와 통계청 등 정부와 금융기관의 통계 자료를 폭 넓게 활용해 한국의 사회불평등 정도가 태국 필리핀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 최고라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평등과 불평등을 0에서 1까지로 표시)가 95년 0.332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에 0.389로 악화했다. "이런 수치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 가운데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0.405)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경제불평등이 커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됐다. 지역간 불균등 성장에 따라 주택 자산 가치의 격차가 커진 데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크게 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종사자간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노동계급 내의 불평등이 확대된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계급은 기능직 노동자들이 97년 12월부터 98년 12월 사이 20% 이상의 실업률을 보이는 등 "외환위기의 충격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는 ‘중산층 위기론’은 사실보다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97년 6월과 2000년 6월 사이 (중간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입법공무원 및 관리직 종사자 수는 약 11.0% 줄어 기업 구조조정으로 관리직 종사자의 고용불안정이 대단히 커졌지만 이 기간 전문가 수는 무려 11.0% 늘어 경제위기와 관계 없이 증가 추세"라며 "중산층의 위기는 관리직 종사자들의 위기로 한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는 중산층이 위기라는 대명제에는 동의하면서 "중산층의 위기는 중간계급도 노동시장에서 더 이상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과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새로운 현상"이며 "이러한 점에서 중산층의 위기는 성공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한 성취동기의 근저에 놓인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위기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의 이윤만을 가장 우선하는 경제 시스템을 작동 원리로 삼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기업과 피고용자 그리고 지역주민이 공생하는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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