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파바로티’의 선행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알렉스 프라이어(12·영국 왕립음악학교 7학년)군은 최근 2년간 7개의 국제 주니어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유럽 음악계에 돌풍을 몰고 온 음악 신동이다. 앳된 용모로는 상상하기 힘든 파워 넘치는 미성 때문에 비평가들은 꼬마 파바로티라고 부른다. 작곡과 피아노 등 각종 악기 연주에도 능해 ‘음악 신동’이라는 별칭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그런 프라이어군이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러시아에서 고아원 어린이 4명을 초청해 자기가 사는 런던 구경을 시켜 주고 승마를 함께 하고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도 함께 관람했다. 내년에는 새해맞이 여행을 같이 떠날 계획이다.
프라이어는 29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텔레비전에서 러시아 세르푸호프시의 고아원 친구들이 ‘세상 어디에도 날 사랑해 줄 누군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초청 경비는 각종 콘서트를 통해 마련한 것이다.
"친구들과 구경을 함께 하면서 엄마한테 4명 중 1명은 우리 가족과 함께 살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나머지 셋이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 친구들이 오히려 고마워요.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제가 삶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줬어요. 테레사 수녀가 늘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작은 것을 할 수 있을 뿐이지요.’ 조금의 사랑과 관심만이라도 나누어 준다면 세상은 훨씬 좋아질 것 같아요."
프라이어는 지난 9월 체첸 반군의 테러로 러시아 베슬란의 초등학교에서 400명 가까이 어린이가 숨졌을 때 레퀴엠(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을 작곡해 헌정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크렘린궁에서 연주됐다.
프라이어가 러시아 어린이에 특히 관심을 쏟는 이유는 증조할아버지가 20세기 연극 이론의 토대를 놓은 유명한 러시아 연출가 스타니슬라프스키(1863~1938)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엘레나는 그의 손녀로 1989년 영국으로 이민 와 아버지와 결혼했다.
평론가들은 프라이어가 다재다능한 증조할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았다고 평가한다. 스타니슬라프스키 박물관에서 일하는 스테판 발라쇼프(91)는 모스크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촌이 돌아가신 지 66년이 됐지만 그의 재능은 우리 가문에 여전히 살아 있다"며 프라이어를 자랑스러워 했다.
프라이어는 2002년 12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솔로 데뷔 리사이틀을 하면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밀레니엄 돔, 뉴욕 카네기홀,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최고의 무대에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칼린카 등 러시아 민요를 부를 때면 소년답지 않게 음영 짙은 슬라브적 열정이 넘쳐흐른다.
지난해에는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에 이어 바이올린, 호른, 오르간 협주곡, 금관 5중주곡 ‘러시안 판타지’등 많은 자작곡 앨범(www.alexprior.co.uk)을 내놓았다. 현재는 푸시킨의 소설을 오페라로 작곡하는 한편 내년에 연주할 트라팔카 전투 200주년 기념 교향곡 오케스트라 작업의 한 부분을 맡아 작업 중이다.
프라이어는 올 6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폐막식에서 축하곡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이 때 스타니슬라프스키상을 받은 미국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이 노래를 듣다가 무대에서 무릎을 꿇은 채 넋이 나갔다. 당시 현지 언론은 그 장면 사진과 함께 "천상의 목소리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라는 스트립의 말을 대서특필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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