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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03> 펜잔스의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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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03> 펜잔스의 해적

입력
2004.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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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12월30일 윌리엄 길버트와 아서 설리번의 코믹오페라 ‘펜잔스의 해적'이 영국 데본주 페인튼의 비주 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은 그 이튿날 뉴욕의 5번가 극장에서도 막을 올렸다. 런던에서는 이듬해 4월3일 오페라코믹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극작가 길버트와 작곡가 설리번 듀오의 명성을 세계 무대예술계에 인상적으로 각인시킨 ‘펜잔스의 해적'은 해적의 일원인 주인공 프레드릭이 21세가 되는 순간 해적 노릇에 염증을 내고 새로운 자아를 찾겠다고 선언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자식이 ‘파일럿'이 되길 바랐던 프레드릭 부모의 말을 ‘파이릿(해적)'으로 잘못 듣고 프레드릭을 해적이 되도록 한 유모 루스와 해군제독 스탠리의 아름다운 딸 마블 그리고 좌충우돌하는 프레드릭 사이의 삼각관계를 해군과 해적 사이의 기묘한 갈등 속에 유쾌하게 배치하고 있다.

윌리엄 쉬엥크 길버트(1836 ~1911)는 런던대학교를 졸업하고 연극평론가로 활동하다가 1871년 아서 시머 설리번(1842~1900)을 만난 뒤 극작가로 나섰다. 설리번은 14세에 왕립음악원 장학생으로 입학할 만큼 어린 시절부터 천재를 인정받았고, 그 뒤 독일 라이프치히음악원에 유학해 작곡·지휘·피아노를 배운 뒤 귀국해 왕실음악원의 교수로 있었다. 두 사람이 공동작업을 시작했을 무렵의 명성은 여섯 살 아래의 설리번 쪽이 더 컸지만, 이내 두 사람의 명성은 한 묶음으로 대서양 양쪽의 영어권 세계를 풍미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함께 만들어 ‘길버트-설리번 오페라'로 불리는 희가극은 ‘펜잔스의 해적' 외에도 ‘마법사'(1877), ‘군함 피나포어'(1878), ‘미카도'(1885), ‘곤돌라의 사공'(1889) 등 19편에 이른다. 길버트-설리번 오페라는 또 1881년 런던에 사보이 극장이 개관한 뒤로는 주로 이 극장에서 공연된 탓에 ‘사보이 오페라'라고도 불렸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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