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수학으로 세상읽기/ 108번뇌 담는 골프 홀?
알림

수학으로 세상읽기/ 108번뇌 담는 골프 홀?

입력
2004.12.30 00:00
0 0

올해 총선에서는 유난히 초선 의원이 많이 당선됐다.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초선이라고 한다. 그 중 열린우리당의 초선 의원은 108명인데, 이들의 별명은 ‘108번뇌’다.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초선 의원들은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기에, 백팔번뇌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것 같다.108의 우연은 스포츠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골프 홀의 지름은 4¼인치로 약 11㎝다. 더 정확히 말하면 108㎜다. 처음엔 수도 파이프를 골프의 홀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 크기가 108㎜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유래야 어찌 됐든 홀은 골프공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성인 남자가 손을 넣어 공을 꺼낼 수 있는 적당한 크기라고 한다. 골퍼들이 공을 칠 때 나름대로 번뇌의 과정을 거치므로, 108번뇌와 골프 홀의 지름이 108㎜라는 사실은 잘 어울린다.

야구공의 표면은 두 개의 가죽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두 가죽은 108땀으로 연결돼 있다. 그런데 왜 하필 108땀일까? 골프와 마찬가지로 야구 역시 서양에서 비롯된 운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도적으로 108땀이 되도록 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야구 전문가들은 ‘108땀이 플레이에 적당한 최상의 야구공을 만든다’라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어 속 시원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투수가 공을 던지거나 타자가 공을 칠 때 한 타 한 타 심사숙고하기 위해 세상의 번뇌를 잊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므로, 이런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처럼 서양에서 만들어진 스포츠의 공들이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인 불교의 백팔번뇌와 숫자상 연결되는 점은 공교롭다.

백팔번뇌(百八煩惱)란 말 그대로 번뇌의 가짓수가 108가지라는 의미인데, 108이 산출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람에게는 감각과 감각의 대상이 결합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분별이라는 여섯 가지 작용이 있다. 이 여섯 가지는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平) 세 가지로 구분되기 때문에 18가지의 번뇌가 있다. 또 이 18가지는 각각 더러움(染)과 깨끗함(淨)이 있어 모두 36가지가 된다.

이 36가지의 번뇌는 과거(전생) 현재(금생) 미래(내생)에 존재하기 때문에 3을 곱해 108가지가 된다. 또 다른 해석에 의하면 앞의 여섯 가지 작용 각각에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平), 괴롭고(苦), 즐겁고(樂), 괴로움도 아니고 즐겁지도 않은(捨)은 여섯 가지가 있으므로 36가지의 번뇌가 존재한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면 108이 된다.

백팔번뇌의 영향 때문인지 불교 사찰에는 108계단을 비롯해, 108의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가의 염주는 108번뇌를 상징하므로, 염주의 개수는 108개이다. 절을 할 때도 108을 기본으로 한다. 부처님께 정성을 올리는 일천배는 108배를 열 번 하는 것으로, 정확히 표현하면 1,000배가 아닌 1,080배가 되는 셈이다. 삼천배 역시 3,000번이 아니라 3,240번 절을 하는 것이 된다.

섣달 그믐날 자정이 되면 보신각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제야의 종을 울린다. 원래는 중생들의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108번 종을 쳤지만, 요즘에는 약식으로 33번만 친다. 108과 마찬가지로 33이라는 숫자도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33 관세음보살이 있는데, 이 보살들이 모든 사람에게 화신(化身)한다 하여 33은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대궐 앞에서 상소하거나 민란을 일으킬 때 33명의 이름을 적어 통문을 돌렸다. 단체나 회사를 세울 때 발기인의 수를 33명으로 하는 관례를 따르기도 했다. 3·1 운동 때 민족 대표를 굳이 33명으로 한 것은 독립 의지가 전국민적이라는 것을 표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보면 종을 33번 치는 것은 ‘온 사방 만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제 며칠 후면 울려 퍼질 제야의 종소리가 갑신년의 시름을 씻고 을유년을 맞는 희망의 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