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아테네 올림픽 남자 탁구에서 만리장성의 높은 벽을 허물고 금메달을 합작한 김택수(34·KT&G 코치)와 유승민(22·삼성생명).24일 충북 음성군 음성실내체육관에서 만난 탁구 사제의 대화는 몰려드는 팬들을 따돌리는 일부터 시작됐다.
"승민이 너 정말 스타 다 됐다. 그런데 올림픽 끝나고 한 턱 낸다는 약속은 언제 지키는 거냐." "코치님이 더 바쁘시던데요, 뭘. 그리고 저 가난해요. 돈은 부모님이 다 관리하니까요."
유승민은 중1 시절 당시 대우증권 팀에서 2주일간 위탁훈련을 받을 때 ‘대 선수’를 처음 봤다. "당시 김택수 하면 거의 하늘이었죠.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으니까요." 김택수가 말하는 ‘탁구신동’과의 첫 만남은 사뭇 진지하다. "그 때 승민이와 같은 방을 썼어요. 그런데 이 녀석 첫날 밤에 ‘파이팅 파이팅’ 외치며 잠꼬대를 하더라고요. 탁구를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죠." 유승민이 빙긋 웃는다. "내가 그랬나. 제가 기억하는 건 코치님은 침대에서 자고 저는 바닥에서 잤다는 거에요."
그 때 인연으로 유승민은 김택수의 라켓을 도맡아 물려 받았다. 이번 올림픽 금메달도 김택수가 준 라켓에서 나왔다. 그래서 일까. 금메달이 확정되던 순간 김코치는 유승민을 안아주지 않았다. 반대로 안겼다. 이럴 땐 코치가 선수를 안아주는 거 아닌가? 김택수가 멋쩍게 웃는다. "펜스를 넘는데 제가 제 속도를 주체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안겨버렸죠."
두 사람이 본격적인 사제가 된 건 김택수가 올 4월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부터. "형이 어느 날 코치님이 되니 처음엔 어색했죠. 그래도 코치님의 꼼꼼한 지도로 경기 읽는 눈과 수비를 많이 배웠어요." 김택수는 코치가 된 뒤 유승민의 단점이 더 잘 보였단다. 문제는 유승민의 덜렁대는 성격. "집중력이 생명인 탁구에서는 치명적이거든요."
이날 은퇴식을 한 김택수는 선수시절 가장 기억 나는 경기로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탁구 남자단체 결승을 꼽았다. 남북대결로도 관심을 모은 이 경기는 5시간30분의 혈투 끝에 한국이 3-2로 승리했다. 유승민은 김택수가 금메달을 딴 98년 방콕아시안게임 단식 결승전을 들었다. "저는 대표 선발에서 탈락해 TV로 지켜봤는데 정말 짜릿하고 부러웠어요. 요즘 인터넷에 ‘32구 랠리’라고 그 때의 동영상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에요."
서로에게 덕담 한마디. 유승민이 먼저 말했다. "코치님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리라 믿어요. 우리 열심히 해서 내년 4월 세계선수권에서 또 큰일 한번 내야죠." 김택수의 덕담은 오히려 따끔한 충고다. "어서 빨리 2004년의 영광을 잊고 다시 시작해. 정상에 오르는 건 힘들지만 추락은 한 순간이거든."
음성=김일환기자 kevin@hk.co.kr
●김택수는
광주 숭일고 3학년이던 1987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17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았다. 98년 방콕아시안게임 단식 금메달을 따는 등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다. 2004 아테네올림픽 대표로 선발됐지만 은퇴를 전격 선언하고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유승민은
1997년 15살(중3)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됐으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단식 1회전에서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복식 금메달을 딴 뒤 자신감을 얻었고 올해 열린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중국 선수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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