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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을 물었더니-이기창 대기자의 선지식과의 대화]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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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을 물었더니-이기창 대기자의 선지식과의 대화] 무비스님

입력
200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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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불법이란 무엇인가, 요게 제 화두이지요." 범어사 염화실(拈花室), 무비(無比) 스님은 선방시절을 회고하다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 듯 한마디를 툭 던진다. 사실 늘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상식적인 물음이어서 정작 잊어버리곤 했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어쭙잖은 생각이 은연중 고개를 쳐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물론 수좌시절 스님의 화두는 그것이 아니다. 그 자문(自問)은 반세기 가까운 정진의 결실이 스며든 ‘무비식 화두’라고 할 수 있겠다. 무비 스님이 누구던가. 절집에서 첫 손꼽히는 강백(講伯)이 아니던가. 궁금증이 턱밑까지 파고들었지만 서둘러 묻는 행위는 도리가 아닐 듯 싶었다. 답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미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뿐. 뒤늦게 찾은 답은 실천의 문제로 다가왔다.

예부터 호국의 산으로 불리는 부산 금정산을 굽이돌아, ‘금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노닐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범어사(梵魚寺)를 찾아가는 동안 투기(投機)의 기연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스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의기투합의 기쁨을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기대로 그치고 말았다. 세속의 지식과 상식이 장애로 작용한 것이다. 투기라니.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기연이 투기인데, 그 숭고한 의미는 이 땅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고작 ‘부동산투기’처럼 망국적 병폐의 의미로 쓰일 뿐이니.

절집에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의 고사가 전해온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행하라’는 뜻이다. 지극히 평범한 말이되 평범의 껍질을 벗겨내면 진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국 당나라 시대 선의 달인 조과선사와 시의 천재 백낙천(白樂天)의 만남에서 회자(膾炙)된 게송이다. 둘이 나눴던 선문답의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무엇이 불법의 도리입니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행을 하는 것이라네."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실망의 화살이 조과를 향해 날아왔지만, 그 화살이 도리어 백낙천의 오만과 아집을 산산조각내는 보검이 될 줄이야.

"세 살 먹은 아이도 말은 할 수 있겠으나,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지 못함을 그대는 아는가!"

종교의 생명은 실천에 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그럼 무비스님의 회향(廻向)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인불사상(人佛思想)과 무아(無我)를 두 바퀴로 법륜을 굴려 세상에 다가간다. 인불사상은 사람이 곧 부처라는 스님의 지론이다. 무아란 ‘나는 없다’는 비움의 실천이다.

"그 동안 공부한 바로는 ‘사람이 부처님이 아닐 이유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사람이며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뒤집어보면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서로를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합니다. 남도 행복해집니다."

이어진 말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 말을 듣는 분들은 ‘중다운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요. 허나 중이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세상에는 살인자나 범죄자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는데 그들마저 부처로 섬기라니. 아무리 스님이라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대뜸 그런 반론이 쏟아질 것 같다.

"죄가 밉지 사람이 미운 게 아니지요. 사람은 어떤 인연 또는 조건에 의해 잘못을 저지르는 겁니다. 한 번의 잘못을 마치 그 사람의 본 모습인 양 영원히 살인자, 범죄자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

그렇다면 왜 갈등과 대립이 끊이질 않고 범죄 없는 날이 없을까. 사람에게는 부처와 악마의 마음이 함께 갖춰져 있는 것일까.

"마음의 바탕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갓 태어난 생명의 마음은 티 한 점 없는 백지나 다름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이라는 화가가 그 안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겁니다. 선과 악은 인연에 따라 일어날 뿐이지요. 환경이 마음을 움직여 선과 악의 인연을 부릅니다. 마음이 거울처럼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사는 사회일 것입니다. 선한 마음이 많으면 그 사회는 백화로 장엄한 정토가 될 것이고, 악한 마음이 득세하면 이전투구의 세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아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그 무엇인가. 잠시라도 나를 놓는다는 것이 세상살이에 얼마나 손해를 가져오는데. 그러나 스님의 설명은 걸림이 없다. 무아는 나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은 본래 자기중심적으로 살게 마련이다. ‘작은 나’에 매달리는 평범한 삶이다. 무아의 참뜻은 잠시라도 나를 잊고 이웃을 향해 눈을 돌리는 삶이다. 그것이 ‘큰 나’를 추구하는 삶의 길이다. 집착을 버릴 때 삶은 가벼워진다. 가볍다는 말은 무게를 저울질하는 세속적 표현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날아갈듯한, 걸림이 없는 기쁨을 말한다.

"삶은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살아지지 않습니다. 기대와 희망을 배반하는게 세상살이가 아닌가요. 그럴 때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부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요. 물질적인 가치를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삶에선 만족이란 존재할 수가 없어요. 이 세상에 탐욕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방법은 없으니까. 문제의 해결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줄여나가는데 있지요."

스님은 하나의 화두를 내놓는다. 정직, 두 글자다. 삶의 모습을, 삶의 내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우리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부연하면서. 정직이 실종된 사회는 구석구석이 부족해진다. 그 화두를 타파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부귀영화는 삶의 군더더기에 불과합니다. 비할 데 없는 보배를 지니고도 우리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 부귀영화에 집착합니다. 남과 비교하는 데서 불행의 싹이 자랍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저승길에는 동전 한 닢 넣어 가져갈 공간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통째로 버리고 가는데 생명보다 아까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깨달음의 도량이 어디메뇨

지금 이 세상 바로 여기라네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의 장경각 앞 뜰 표석에 새겨진, 스님이 좋아하는 게송이다. 원각도량은 깨달음이 충만한 이상향의 세계다. 그 이상향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삶의 모습을 이토록 꾸밈없이 그려낸 그 게송에 우리의 마음을 살며시 담가보자.

lkc@hk.co.kr

■ 무비스님은 누구

"지인지면 부지심(知人知面 不知心), 사람은 얼굴로 구별하되 어찌 마음까지 알겠느냐는 말이지요."

출가의 인연에 대한 대답이다. 1943년 경북 영덕에서 중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스님은 또래의 아이들과 마을 근처 절에 자주 놀러 다녔다. 그런데 하루는 스님보다 어려보이는 동자승이 이런 말을 들려준 것이다. 열 셋의 어린 나이였지만 가슴에 와 닿은 충격의 여진이 가실 줄 몰랐다. 급기야는 발길이 절로 향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가출이었으되 어린 소년은 출가를 단행한 것이다. 발길은 불국사에서 일단 멈췄다. 하지만 ‘중노릇’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범어사에 가서 배우라는 스님들의 얘기를 듣고 무작정 범어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했다.

일반세상으로 치면 대학의 학장에 해당하는 범어사 강원의 강주로 있는 무비스님은 조계종단에서는 역경(譯經)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동안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을 비롯, 우리말로 옮긴 경전만해도 10여종에 이른다. 무비스님에 앞서 운허 탄허 스님 등 역경불사에 힘을 쏟은 선지식이 여럿 있었지만 일상의 언어로 동시대인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작업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전연구를 핑계 삼아 이제껏 주지직도 마다한 스님은 사실 치열한 구도자이기도 하다. 학인으로서 해인사 강원을 마친 뒤에도 산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고 곧바로 선방에 들었다. 늘 무자(無字)화두를 껴안고 살았다. "수마와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지요. 서서 정진할 때는 벽에 못을 치고 노끈을 묶은 뒤 목에 걸기도 했고 좌선할 동안에는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벽과 배 사이의 공간에 대고 화두와 씨름했습니다."

10여년을 선방에서 보낸 스님은 오삼(53) 선지식을 찾아 구도행각에 나선 선재동자처럼 전국의 선지식을 참례하기 시작했다. 동산 효봉 춘성 전강 향곡 서옹 성철 등 내로라 하는 선객들을 모시고 수행의 깊이를 더해갔다. 구도의 여정에서 만난 스승이 탄허 스님이었다. 교학(敎學)의 바다에 빠지게 된 인연이 비로소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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