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인대표회담이 27일 6차 회담을 끝으로 사실상 결렬됐다. 회담을 시작하며 "상생과 타협하는 정치를 보여주겠다"던 여야 대표들은 1주일 만에 태도를 돌변, 책임전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측은 "회담 내내 유신망령이 배회하는 섬뜩함마저 느꼈다"고 비아냥대고 야측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라고 맞서고 있다.여야 대표들은 28일 소속 당으로 돌아와 ‘네 탓’을 외치며 장광설을 폈지만 상호간에 협상결렬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들은 얽힌 정국을 푸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4인회담에 실패함으로써 협상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당내 강경파를 제압할 장악력도, 설득할 리더십도 부족했던 것이다. 네 사람 모두 상황에 따라 강경론과 현실론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하는 데 급급했다.
여야는 특히 국보법을 놓고 한발씩 물러섬으로써 교착상태를 풀기는커녕 협상 시늉만 하다 곧바로 기존당론으로 회귀, 회담을 거듭할수록 명분을 축적하는 데만 신경을 썼다.
우리당만 하더라도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말만 "전권을 갖고 협상한다"고 했을 뿐 실제로는 협상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원내과반수의 힘도, 타협의 정치도 어느 하나 보여주지 못했다. 두 사람은 당초 4대 입법의 정기국회 회기내 통과가 어려워지자 국보법 처리를 내년으로 미루고 나머지 3개 법안은 여야 협의로 처리하는 이른바 ‘3+1’안을 검토했으나 폐지론자의 반발에 부딪치자 바로 철회했다. 국보법 폐지법안을 국회 법사위에 강행 상정한 지 하루 만에 "연내처리를 유보한다"고 발표한 것이나 이후 ‘연내 처리여부’를 필요할 때마다 번복하는 해프닝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천 대표측은 "한번도 대체입법을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폐지론자들은 "천 대표가 오락가락해 혼선만 빚었다"고 불신하고 대체입법을 건의한 중진들은 "속내를 모르겠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물론 천 대표는 회담결렬로 국보법 연내처리 무산이란 정치적 부담을 한나라당으로 돌리는 데는 성공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초 공언했던 4대 입법 등을 연내 마무리하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이 의장 역시 원외에다 당내 기반이 약한 한계때문인지 속내와 달리 내부 강경파 눈치를 보느라 대타협을 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리더십 부재라는 점에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도 별 차이가 없다. 박 대표는 김 원내대표를 제치고 직접 대여협상에 나섰지만 사사건건 반대하는 모습만 비쳐지면서 보수에 치우친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를 상실했다. 4인 회담 내내 ‘벼랑 끝 협상’만 고집, ‘협조할 것은 하고 원칙은 고수하는’ 야당다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정기국회 이후 드러난 두 사람의 불신이 4인 회담 이후 더욱 깊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여야 모두 당내리더십이 취약하고 별 재량권도 없는 상황에서 국보법 등 첨예한 문제의 타협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높지 않았다"고 평가절하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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