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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02> 퐁파두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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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302> 퐁파두르 부인

입력
200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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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12월29일 루이15세의 정부(情婦)로 한 시대를 풍미한 퐁파두르 부인이 파리에서 태어났다. 1764년 졸(卒). 퐁파두르 부인의 어릴 적 이름은 잔 앙투아네트다. 사촌인 징세청부인 르노르망 데티올과 결혼한 뒤 사교계 중심인물이 되었고, 루이15세의 정부가 되면서 후작부인 작위를 받았다. 왕실이 공인한 국왕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은 죽을 때까지 루이15세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는데, 그녀에게 너그러웠던 왕가 사람들과 달리 대신들은 그녀를 미워했다고 한다. 그녀가 국왕과의 사적인 관계를 이용해 공적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일 것이다.퐁파두르 부인이 루이15세에게 행사했던 영향력의 크기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국왕으로 하여금 프로이센 프리드리히2세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숙적 오스트리아와 제휴하게 하고 궁중의 인사를 전횡하는 등 실질적 섭정 노릇을 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그런 외교와 인사 문제를 실제로 결정한 것은 국왕이고 퐁파두르 부인은 문인과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후원하는 정도의 소극적 역할에 머물렀다는 견해도 있다. 아무튼 퐁파두르 부인은 사이가 나빴던 루이15세와 볼테르를 화해시켰고, 백과전서파를 보호했다. 퐁파두르 부인의 모습은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캉탱 드 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부인 초상’(1755)에서 볼 수 있다.

군주가 아니면서도 최고권력을 휘두른 여성들이 역사에는 더러 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家) 출신으로 16~17세기의 한 시절 프랑스 궁정과 사회 전체를 쥐락펴락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마리 드 메디시스 같은 이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은 국왕 어머니로서 법에 따라 섭정을 했던 사람들이므로 퐁파두르 부인과는 경우가 다르다. 조선조에서 퐁파두르 부인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사람을 굳이 찾자면 숙종의 빈(嬪)이었던 희빈(禧嬪) 장씨(張氏)를 꼽을 수 있겠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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