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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역사속으로 사라진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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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역사속으로 사라진 별들

입력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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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 정·관계/ 이한빈 前부총리·김동조 前외무장관

▦이한빈(李漢彬·78세·1월21일)=전 부총리. 1979년 12월 10·26사태 직후의 정치불안과 제2의 오일쇼크 등 최악의 상황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돼 시장 현실화 정책 등을 폈다. 5·18 민주화운동 직후 내각총사퇴를 주장하며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자유지성 300인회’ 공동대표로 활약하는 등 시민운동에도 앞장섰다.

▦안상영(安相英·65세·2월4일)=전 부산시장. 부산시장에 재선돼 부산아시안게임 등을 성공리에 치렀다.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돼 10년형을 구형받고 1심 선고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또 다른 뇌물혐의가 드러나자 복역 중이던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신도환(辛道煥·83세·3월24일)=전 신민당 최고위원. 1957년 4대 민의원으로 당선, 정치에 입문한 뒤 3공시절 야당 신민당의 사무총장·최고위원으로 자신의 계보를 이끌었던 5선의원. 88년 신민당 총제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박태영(朴泰榮· 62세·3월29일)=전 전남지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재직 당시 인사·납품 관련, 검찰 수사를 받던 중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14대 국회의원, 초대 산자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전남지사에 당선된 뒤 전남 경제 살리기에 매진했다.

▦홍성철(洪性澈·78세·5월2일)=전 청와대 비서실장. 3공에서 대통령 정무수석과 내무·보건사회부장관, 6공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통일원장관을 역임했다.

▦장예준(張禮濬·81세·8월24일)=건설·상공·동력자원부장관을 역임했다. 건설부장관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기여했다.

▦이민우(李敏雨·89세·12월9일)=전 신민당 총재. 6선의원으로 야당 외길을 걸었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5년 2·12총선 당시 서울 종로·중구에 출마해 신민당 돌풍을 주도했다. 87년 신민당 총재시절 내각제 수용을 담은 ‘이민우 구상’으로 신민당이 분당사태로 치닫자 은퇴, 보통시민으로 지냈다.

▦김동조(金東祚·86세·12월9일)=전 외무장관. 박정희 정권에서 대미·대일 외교를 주도한 외교사의 산 증인이다. 전후 1세대 외교관으로 60년대 한·일회담을 비롯해 베트남 파병, 박동선 로비파동 등 대형 사건의 중심에서 한국 외교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재계/ 대한전선 설원량·파라다이스 전낙원

▦박남규(朴南奎·83세·2월26일)=전 조양상선그룹 회장. 1961년 그룹의 모체인 조양상사를 설립한 뒤 삼익선박 제일생명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그러나 2001년 조양상선이 파산선고를 받은 후 사실상 해체된 그룹의 재기를 끝내 보지 못했다.

▦남상국(南相國·59세· 3월11일)=대우건설 사장. 평사원에서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대표적인 ‘건설맨’. 2000년 말 ㈜대우가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로 분리되면서 대우건설 사장직을 맡아 우량기업으로 바꿔 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사장 유임을 청탁한 것으로 알려지자 한강에 투신했다.

▦설원량(薛元亮·62세·3월18일)=대한전선 회장. 대한산업 창업주인 고 설경동 회장의 3남으로 1972년 대한전선 사장에 취임, 중견그룹으로 육성했다. 근검절약한 생활로 유명하다. 유족들도 국내 사상 최다인 1,335억원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했다.

▦이은범(李殷範·76세·5월23일)=범양사 회장. 1958년 무역회사인 범양사를 설립해 94년까지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70년부터 쏠레땅쉬범양, 범양화섬 등 10개의 계열사를 세워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장기하(張基夏·72세·9월29일)=전 진로그룹 회장. 1984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했다. 85년 진로 고문으로 추대돼 진로그룹 부회장 등을 역임하다 91년 회장이 됐다.

▦전낙원(田樂園·77세·11월3일)=파라다이스 그룹 회장. 카지노 업계 대부로 군림했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 때 탈세혐의를 받자 한때 해외로 도피하기도 했다. 94년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을 설립, 사회환원에도 힘썼다.

■ 학계·종교계/ 허웅·김진균 교수…숭산스님

▦허웅(許雄·86세·1월26일)= 한글학자. 주시경 최현배를 잇는 대표적 국어학자.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뒤 부산대, 성균관대, 연세대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오랫동안 한글학회에 봉직하면서 한글 전용운동을 이끌었다.

▦김진균(金晉均·67세·2월14일)=사회학자. 진보학계의 맏형으로 불렸다.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 서울대 교수에서 해직된 후 ‘상도연구실’ ‘산업사회학회’ 등을 주도했다. 복직 후에는 민주화교수협의회 회장을 지내는 등 학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고병익(高柄翊·80세·5월19일)=역사학자. 서울대 교수·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문화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세대 동양사학계의 대표주자로 방송위원장,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이사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학문과 현실의 조화를 실천한 학자로 평가된다.

▦이기백(李基白·80세·6월2일)=국사학자. 이화여대 서강대 한림대에 봉직하면서 많은 후학을 길러 냈다. 일본제국주의가 남긴 식민사관 극복에 앞장섰다. ‘한국사신론’의 저자로 대중의 역사교육에도 힘썼다.

▦서돈각(徐燉珏·84세·8월24일)=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상법학자로 동국대·경북대 총장, 학술원 회장을 역임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대표적인 재가(在家)지도자.

▦한갑수(韓甲洙·91세·11월21일)=한글학자. KBS라디오 ‘바른말 고운말’코너에 30여년 출연하는 등 한글의 현대화와 보급에 앞장섰다. 한글재단 이사장, 한글기계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문호(李文鎬·82세·12월5일)=전 서울중앙병원장. 1946년 서울대의대(경성대 의학부)를 졸업한 뒤 정년퇴임 때까지 서울대의대에서 내과교수와 암연구소장을 지내면서 내과학·핵(核)의학의 기틀을 세웠다.

▦석주(昔珠·95세·11월14일)=봉은사 조실. 도심 포교의 개척자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포교원장, 동국역경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불교계의 명필로도 알려졌다.

▦조용술(趙容述· 84세·11월15일)=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을 지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재단이사장,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고문 등을 맡으며 복음 전파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숭산(崇山·77세·11월30일)= 화계사 조실. 32개국에 130여 개의 선방을 개설한 한국불교 해외포교의 선구자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화계사 국제선원장 현각 등 60여명의 외국인 제자를 배출했다.

■ 문화예술계/ 구상·김춘수 시인…배우 독고성

▦구상(具常·85세·5월11일)=시인. 연작시 ‘초토의 시’에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국전쟁의 고통을 초월해 구원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줬던 한국 시단의 원로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어효선(魚孝善·79세·5월15일)= 아동문학가. ‘파란마음 하얀마음’ ‘과꽃’ ‘꽃밭에서’ 등 동시·동요 350여편을 남겼다. 서울 매동·남산초등 교사, 문인협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평생 교육자와 문학가의 길을 걸었다.

▦류달영(柳達永·93세·10월27일)=수필가 겸 농촌운동가.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과 함께 1930년대에 농촌운동을 벌였으며, 광복후 식량자족운동, 무궁화보급운동을 폈다.

▦김상옥(金相沃·84세·10월31일)=시조시인. ‘조춘’ ‘백자부’ ‘다보탑’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전통미를 살린 시조집 ‘초적’ ‘목석의 노래’ ‘삼행시’ ‘묵을 갈면서’ 등을 남겼다. 60여년을 해로한 부인이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 5일만에 따라갔다.

▦김춘수(金春洙·82세·11월29일)=시인. 국민의 애송시 ‘꽃’을 남긴 모더니즘 계열의 거목. ‘구름과 장미’ ‘꽃의 소묘’ ‘처용단장’ 등 25권의 시집을 남겼다. 먼저 숨진 부인을 그리며 마지막까지 시심을 놓지 않았다.

▦김대환(金大煥·71세·3월1일)=타악기 연주자. 북과 드럼의 달인으로 쌀 한 톨에 반야심경 전문 238자를 써넣어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랐다.

▦황문평(黃文平·84세·3월13일)=작곡가. ‘빨간 마후라’, ‘호반의 벤치’, ‘꽃중의 꽃’ 등 영화·드라마 주제가,뮤지컬곡 등 900여곡을 작곡했다. 문화평론가로 한국대중음악사를 정리한 저서들도 남겼다.

▦독고성(75세·4월10일)= 배우. ‘목포의 눈물’ ‘밤안개’ 등 1960~70년대 액션영화를 누볐다. 악역 스타로 주연보다 더 주목받은 조연으로 유명하다.

▦김순철(金淳哲·67세·2월24일)=탤런트. 소박한 서민연기로 인기가 높았다. ‘맹진사댁 경사’등 20여편 이상의 연극에도 출연했다.

▦임윤수(林允洙·87세·8월11일)=국악인. 충청권 국악계 거목으로 평생 수집한 국악기·국악관련 자료 2만점을 대전시에 기증, ‘시립연정국악원’이 설립됐다.

▦‘오뚜기 인생’ 김상범(66세·1월14일), ‘곡예사의 첫사랑’ 박경애(50세·7월14일), ‘머무는 곳 어디인지 몰라도’ 박경희(53세·8월9일) 씨 등도 올해 타계한 가수들이다.

<국외>

■ 레이건·아라파트·말론 브란도…

▦로널드 레이건(93세·6월5일)= 전 미국 대통령. 영화배우에서 대통령 자리에 올라 냉전의 벽을 허물었다. 1981년부터 8년간 풍부한 유머감각과 겸손함으로 미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퇴임 후에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힘겨운 투병생활을 했다. 경제력을 통해 미국을 재건한다는 목표로 ‘레이거노믹스’를 강력 추진, 경제호황의 발판을 마련했다.

▦야세르 아라파트(75세·11월11일)=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이집트 카이로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에 투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거쳐 199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초대 수반이 됐다.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40년동안 ‘영웅과 테러’의 경계에 있었다. 93년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공존의 시대를 연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자크 데리다(74세·10월9일)=철학자.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거장으로 플라톤 이후 수천년간 서구 철학을 지배해온 형이상학에 반기를 든 혁신적 사유방식인 ‘해체론’을 개척했다. 텍스트가 불변의 의미를 지닌다는 기존의 사고를 뒤엎고 텍스트는 다극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파했다. 동성애자 차별과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말론 브란도(80세·7월3일)=배우.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대부’‘지옥의 묵시록’‘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등에서 열연했다. 1960년대 이후 북미 인디언의 권익보호 운동에 매진했다. 73년 아카데미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에 인디언 출신 여배우를 보내기도 했다. 선 굵은 연기가 인상적인 그는 숨지기 전까지 영화 주연을 준비, ‘영원한 영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크리스토퍼 리브(52세·10월10일)=배우. 1978년 ‘슈퍼맨’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사랑을 받았다. 1995년 경마경주 중 낙마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으나 좌절하지 않고 재활에 임했고, 정상인 못지않게 정력적으로 사회활동을 펼쳤다. 미국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지원 중단을 규탄하며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를 지지하기도 했다. "영웅이란 힘센 사람이 아니라 힘을 잘 쓰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프랜시스 크릭(88세·7월28일)=과학자. 생명체의 유전정보가 담긴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세계 최초로 발견, 6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 발견은 현대 생명공학산업의 기초가 됐다. 그의 연구를 토대로 의사들은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했고 경찰은 범죄수사에 DNA 증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세간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

▦레이 찰스(73세·6월12일)=가수. 흑인의 슬픈 영혼을 음악으로 승화시켜온 ‘솔 뮤직의 대부’.‘I can’t stop loving you’ ‘Unchain my heart’등의 노래로 잘 알려졌다. 그래미상을 13차례나 받은 천부적인 가수이자 작곡자였고, 연주자이자 프로듀서였다. 60여장의 앨범에 거의 모든 장르의 미국 대중음악에 흑인 음악인 솔의 정수를 불어넣었다. 7세에 시력을 잃고 고아가 되는 등의 불행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96세·8월3일)=사진작가. 1930년대 초부터 소형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스페인 내전, 독일의 프랑스 점령, 중국의 공산혁명, 마하트마 간디 암살 등 주요 역사 현장에서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등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형을 제공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또 다른 거장 로버트 카파 등과 사진전문 통신사 ‘매그넘’의 창립을 주도하며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폴 스위지(93세·2월28일)=학자·언론인. 미국 사회주의 이론지 ‘먼슬리 리뷰’의 편집장.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독점자본’등 20여권의 저서와 100여편의 논문을 남겼다. 1949년 ‘먼슬리 리뷰’를 창간하면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기고문 ‘왜 사회주의인가’를 실은 것을 비롯, 사르트르, 체 게바라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글을 실어 주목을 받았다.

▦에스티 로더(97세·4월24일)=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의 창업자. 마구간 실험실에서 만든 미용 크림으로 장사를 시작, 세계 130여개국에 10억 달러 어치 이상 수출하는 거대 브랜드로 키웠다. 1998년 타임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천재 경영자 20명’에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프랑수아즈 사강(69세·9월24일)=소설가·극작가. 소르본 대학생이던 19세때(1954년) 발표한 베스트셀러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2차대전 직후 허무와 고독이 지배하던 상황에서 ‘10대 반항’을 상징했다. ‘어떤 미소’‘브람스를 좋아하세요’‘뜨거운 연애’등은 남녀의 미묘한 심리를 담담한 필치로 묘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말년에는 마약복용혐의로 두 차례 기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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