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대학로. 약 200c 거리를 두고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 ‘세자매’의 이름을 내건 연극 두 편이 설치극장 정미소와 게릴라극장에서 동시에 공연되고 있다. 러시아서 수학한 애플 씨어터의 전훈(39)과 미국서 공부한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41)이 같은 원작에 다른 옷을 입혀 연출해낸 무대다. 닮은 듯 구별되는 두 공연 모두 올해 사후 100년을 맞은 체호프를 기리고 관객들이 그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설치극장 정미소의 ‘세자매’는 4월 ‘벚꽃동산’으로 출발한 ‘체호프 4대 장막전’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작품. 막이 오르기 전 안내방송을 통해 2시간 40분의 공연시간을 알리듯이 작심하고 체호프를 만나보라고 권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좌석을 지키고 앉아있는 시간이 전혀 곤역스럽지 않은 공연이다. 연출가 전훈이 앞서 공연한 ‘갈매기’ ‘바냐 아저씨’ 등과 마찬가지로 시적인 문어체로 가득한 원작을 간결한 구어체로 번역해내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마샤! 휘파람 불지마. 뱀 나와." "회자정리, 이제 이렇게 헤어지는군요." 등 친밀감 넘치는 대사가 귀에 척척 감긴다. "체호프의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참 맛을 어렵지않게 전해주고 싶었다"는 연출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대뿐만 아니라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서도 낯이 익은 조민기(베르쉬닌) 김정난(마샤) 정원중(안드레이) 이호성(체부트긴) 류태호(투젠바흐) 등 호화 배역진이 빚어내는 연기 앙상블은 흠집을 찾기 힘들다. 무대장치의 간단한 변환과 등장 인물들의 동선 만으로 응접실, 2층 방, 정원 등의 공간을 명확히 표현해낸 점도 인상적이다. 1월2일까지 (02)741-3934.
게릴라극장 무대에 오른 ‘세자매-잃어버린 시간’는 체호프를 현대적으로 이해하기위해 원작을 살짝 비틀었다. 전훈 연출의 ‘세자매’가 원작에 충실하면서 드라마의 밀도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우리 것으로 토착화하고 재해석하려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했다.
19세기 말 러시아 어느 지방서 1930년대 한국의 한 시골로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바꿨다. 세자매 올가 마샤 이리나는 진미순 미영 미란으로, 안드레이와 베르쉬닌은 진하진 김남신으로 각각 변신시켰다. 세 자매와 안드레이가 그토록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과거의 표상 모스크바는 경성으로 대체했다.
‘야자수 그늘 밑에서 우리가 놀던 그때가…’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황금심 노래의 애절한 음색이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의 시간을 잃어버린 세 자매의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인형극 요소를 도입하고, 옛 가요와 현대 음악의 충돌이라는 극단적인 대비로 원작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창조성이 돋보인다.
연출가 임형택은 "‘세자매’가 지닌 주제를 한국상황에 맞춰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며 "앞으로 좀 더 다듬어 우리식의 이야기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체호프를 오늘의 시각으로 되돌아보는 ‘뉴욕 체호프 나우 페스티벌’에 11월 초청되었다. 1월16일까지. (02)757-1810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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