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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슬픔을 장복했던 시절,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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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슬픔을 장복했던 시절, 그리고 오늘

입력
2004.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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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간된 김훈 박래부의 두 권짜리 문학기행을 만나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잘 생기지 못한 두 사람이 꺼벙하게 웃는 사진을 표지에 내는 무모함도 흥겨웠고 ‘이 시대의 문사 김훈 박래부’라는 자찬을 안쪽 표지에 슬쩍 넣는 겸연쩍음도 웃음을 자아냈다.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했던 것은 박경리의 토지를 더 토지답게 하고 정지용의 향수를 더 고향답게 만든 두 사람의 문장이었다. 단어의 조탁과 글의 꼬임은 쓰는 자에겐 고통이었겠지만 읽는 자에겐 지적인 여흥이었다. ‘글의 노래’라는 부제처럼 그들의 문학기행은 노래이고 소설이고 시였다.

하지만 그 노래는 아름다운 서정의 운율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대의 아픔이나 소외를 목놓아 통곡한 시나 소설들이 그들의 발길을 더 많이 끌어당겼던 듯 싶다.

김훈 씨가 쓴 첫 권의 서문은 어둡고 무거운 정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장명수 기자와 김훈 기자, 박래부 기자는 문학기행을 만들어 가면서 그 세월을 견디어 냈다. 그것만이 치욕과 슬픔을 밥처럼 장복했던 그 참혹한 시절을 통과해가는, 우리들 직업 선후배들의 성실성이며 꿈의 실천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치욕과 슬픔을 ‘장복’했다고 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문학기행의 장정이 시작된 1986년은 전두환 정권의 말기로 보통 사람들도 고통과 울분을 자주 삼켜야 했던 때였다. 시위와 매캐한 최루탄 냄새, 투옥과 고문 등으로 아픈 상처들이 덧나고 또 덧나던 나날이었다. 그 땐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에 갔다. 그들이 감옥에 가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진 부모들이 세상을 뜨는 처절한 일도 적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8년이 흘렀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고문 당하고, 감옥에 갔던 그들이 청와대에, 정부에, 국회에 대거 진출했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 극적인 반전이다.

그런데도 왜 가슴이 후련하지 않을까. ‘우리들 직업’ 선후배들만 그런 게 아니다. 시장에도, 거리에도, 공사장에서도 근심이 가득하다. 살기도 어렵고 마음도 편치 않은 듯 하다.

그들은 항변할 것이다. "왜 우리만 뭐라 하느냐"고. 맞다. 그들보다 더 비난받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대하는 게 있다. 그래서 더 잘하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 질책마저 거두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면, 문학기행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슬픔과 치욕을 장복했던 그 시절의 뜨거운 초심이 떠오를 것이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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