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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식·문화 개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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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식·문화 개혁이 먼저다

입력
2004.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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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 모든 정권들이 개혁을 외쳐 왔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그 이유의 하나는, 제도 개혁에만 신경 쓰고 정작 중요한 의식 개혁에는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만일 제도만으로 족하다면 엄연히 형법이 있는데 왜 이렇게 범죄가 창궐하고 있을까?

해외 여행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선·후진국 간에 윤리와 의식 수준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정직하고 자유롭고 관용이 정착되어 있는 반면에 후진국일수록 그 반대인 것 같다. 윤리 수준에서도 우리나라는 현재 선·후진국의 중간 수준에 있는 것 같다. 값싼 임금으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던 시절은 이미 십여 년 전에 지나갔다. 이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창의력, 정직, 책임감을 함양하여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길뿐인 것 같다.

정보통신산업의 놀라운 발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국민의 창의력은 세계 수준이다. 부족한 것은 올바른 직업윤리이다. 과거 1960~70년대와 같이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발전할 때에는 공장만 많이 지으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여야 할 단계에서는 창의력과 함께 높은 의식 수준을 갖추어야만 우리 경제가 현재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의식 개혁에 성공하려면 사회 분위기, 즉 문화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남들이 하면 그냥 따라 하는 것이 사람이다. 목욕탕에 가면 누구나 옷을 벗고,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이 전쟁터에서는 생사람을 죽인다. 직원 대다수가 부패한 기업에서는 누구나 부패하기 쉽고, 모두가 요령을 피우는 직장에서는 나도 요령을 피우게 된다.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바꾸려면 사회 분위기를 선진국 수준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의식 개혁 내지 문화 개혁은 제도 개혁보다 훨씬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영향력이 큰 사회지도층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과 집단은 역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므로 이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고, 언론과 여타 사회지도층과 시민단체들도 적극 힘을 합하여야 할 것이다.

국민을 설득하려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하고, 그리 하려면 국민들로부터 사심이 없다는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은 이 점에서 부족한 것 같다. 정치인에게 정권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기업인에게 돈 벌 욕심을 버리라는 말처럼 비현실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정권 재창출보다는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감투를 쓰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감투를 쓰고 어떤 일을 하여 어떤 평가를 받느냐일 것이다.

정권만 탓할 일이 아니다. 정권의 수준은 국민들의 수준과 같다. 필자도 그렇지만, 입만 열면 권력자들을 비난하는 우리 자신들도 대부분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의로 둔갑한 탐욕과 아집이 고함지르는 소리로 천지가 요란하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스스로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며, 돈벌이보다는 생업의 성취에서 보람을 찾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환경 보전이 의무임을 알며,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도 존중할 줄 아는 정도에 비례하여 우리나라가 현재의 침체와 혼란을 벗어나서 자유롭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문명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윤리와 문화의 가치는 여전히 소중하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제도와 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과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달성하려면 이제 사회 분위기가 ‘잘 살아 보세’에서 ‘바르게 살아 보세’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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