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8월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 이사벨 1세의 지원으로 대서양 횡단 항해에 나서 두 달여 만에 바하마 제도에 도착, 역사에 ‘신대륙 발견’이란 전환점을 기록한다. 당시 이사벨 1세는 항해에 필요한 선박과 물자, 인력을 대는 대신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의 지배권은 물론, 자원과 산물의 10분의 9를 받기로 했다. 콜럼버스의 모험정신과 결합한 이사벨 1세의 이 투자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스페인이 신대륙에 진출하고, 해양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초석이 됐다.■ 1920·30년대 세계시장을 주름잡은 ‘도요타식 자동직기’의 발명가로 도요타직기 창업자인 도요타 사키치(豊田佐吉)는 자동차 산업에 의욕을 느꼈지만 사내의 반대에 부딪쳐 있었다. 기회는 실로 우연하게 왔다. 1929년 6년간 10만파운드(당시 약 100만엔)를 받기로 하고 영국 플랫사와 특허권 제공계약을 맺자 세무 당국이 100만엔 전체를 과표로 잡았다. 밀고 당기기에 화가 난 사키치는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치자"며 100만엔을 모두 자동차 연구개발에 쏟기로 했다. 도요타자동차가 그렇게 닻을 올렸다.
■ 두 가지는 대표적 벤처기업 성공 사례다. 벤처기업의 정의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 혁신, 모험적 투자 등은 공통요소다. 위험이 강조되는 어감 때문에 ‘모험기업’이란 표현을 피하지만 ‘위험에 도전하는’ 정신이야말로 벤처기업의 핵심이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이 던지는 위험으로 보아 이제는 모든 기업이 벤처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벤처기업’하면 으레 정보기술(IT) 산업 중심의 한탕주의 창업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외환위기 직후의 경험이 낳은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 ‘광풍(狂風)’이라고까지 불린 당시의 ‘벤처 열기’가 잿더미만 남긴 것은 아니다. 인터넷 산업이 뿌리를 내렸고, 게임을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 산업도 자라고 있다. 휴대폰이나 MP3 플레이어 등 하드웨어 산업이 제조업 기반의 붕괴를 늦추고 있다. 그러니 옥석을 가릴 일이지, 옥석구분(玉石俱焚)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대대적 벤처기업 지원 소식에 우선 드는 생각이다. 아울러 그것이 안정적 이윤 확보에 안주한 대기업에 기업가정신을 새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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