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과학기지 김형철 대원/눈보라와 강풍 몰아치는 남극서 "불의의 안전사고 더 이상은 없다"크리스마스 파티요? 고국에서 보내 준 1년치 냉동식량을 쇄빙선에서 끌어내리느라 16명 전 대원이 3일 밤을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내년 12월까지 계속될 제18차 월동대의 남극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 과학의 최전선에서 부끄럽지 않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서울에서 자그마치 1만7,000여㎞ 떨어진 남극대륙 킹 조지섬의 세종과학기지. 김형철(33) 대원은 지난 5일 동료 15명과 함께 서울을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만큼 긴장 속에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너무 먼 탓인지 무전기처럼 중간중간 끊기는 국제전화를 타고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도 사뭇 상기돼 있다.
김 대원은 포크레인(22톤)과 고무보트(15인승), 설상차 운전을 맡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전재규 대원과 같은 불의의 사고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보트를 안전하게 운행하는 게 임무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기지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리, 지형, 해상 장애물 위치 등을 익히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던 그는 올 4월 한국해양연구원 인터넷 사이트를 보고 월동대원 지원서를 냈다. 아내 김혜영(34)씨는 물론 두 딸 현지(8)와 시원(6), 아들 영광(3)이한테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단다.
남극은 지금 여름이라 기온이 낮에는 0도, 밤에는 영하 1도 정도다. 기온 자체는 아직 괜찮지만 초속 40c까지 부는 블리저드(눈보라를 동반한 강풍)가 제일 무섭다. "이곳 날씨는 순식간에 급변해서 알 수가 없어요. 벌써 해양 시료를 채취하려고 5㎞를 나갔다가 가까스로 살아 돌아 온 적도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안개가 깔리면 그야말로 코 앞이 안 보이지요."
그는 남극의 첫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온통 눈으로 덮인 끝없는 하얀 벌판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기침 한번 안 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높이 200c가 넘는 빙산들이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려 안타깝습니다. 지구적 차원에서 남극 환경 보호에 앞장서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한국석유공사 유명균 대리/ 울산 남동쪽 58㎞ 해상 가스전서 "신혼단꿈 접고 산유국 꿈 펼친다"
"산유국의 꿈을 실현하는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사랑하는 신부가 눈에 밟히지만 연소탑에서 붉은 불꽃기둥이 치솟는 모습을 볼 때면 참을 만합니다."
김해공항에서 헬기를 타고 동쪽으로 30분을 가면 시퍼런 바다 위에 웅장한 플랫폼이 우뚝 서 있다. 폐가스를 태워 올리는 불꽃은 365일 단 하루도 꺼지지 않는다. 한국석유공사 가스전사업부 유명균(36) 대리는 이곳 울산 남동쪽 58㎞ 지점의 동해-1가스전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 13일 결혼했지만 신혼의 단꿈은 잠시 접어뒀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아리따운 아내와 보내고 싶지만 전화통화로 만족한다.
21일부터 해상 근무를 시작한 그는 내년 1월 4일까지 망망대해에서 생활해야 한다. 한번 근무하면 2주 동안 플랫폼 안에서 지내야 하는 ‘귀양살이’를 올 6월부터 벌써 6번째 하고 있다.
해상 플랫폼은 악전고투의 위험한 일상이다. 플랫폼 상주자는 석유공사 직원 등 25명. 오징어잡이 배가 플랫폼 기둥을 받은 적도 있어 주변에는 경비선이 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 대리는 생산운영관리를 맡고 있다. 천연가스를 지하에서 퍼 올리는 기계조작을 관리·지휘한다. "길이가 54c에 불과한 데크(1층)에 서 있으면 저 아래 사방이 시퍼런 바다라 아찔합니다. 절해고도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올 여름 초대형 태풍이 왔을 때는 몸이 바다로 날아가기 직전에 대피했어요. 고압가스 폭발 위험 때문에 라이터 켜는 것도 금지돼 있습니다. 퇴근하면 동료들과 탁구를 치며 보냅니다." 그의 전화 목소리가 씩씩하기만 하다.
그는 건국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1996년 석유공사에 입사했다. 작년 필리핀 가스전으로 플랫폼 운영 답사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필리핀인 신부 브라다코 넬시(25)를 만났다. "현재 가스가 모여 있는 세 군데의 욀(우물이라는 뜻)에 길이 2,200c짜리 파이프가 꽂혀 있습니다. 세 군데를 돌아가면서 하루에 1,300톤씩 뽑아 올리고 있습니다. 작업을 중단하면 하루 4억 원어치의 손실이 납니다. 최근 가스가 매장된 새 욀을 하나 더 발견해 너무 기쁩니다. 그만큼 산유국의 길이 넓어지는 것이지요."
박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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