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1) 쌀에 아직 희망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1) 쌀에 아직 희망 있다

입력
2004.12.27 00:00
0 0

쌀 시장 개방,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국내 농가에 위기감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쌀 협상으로 쌀 의무수입량이 대폭 늘어나고 이 중 일부가 시판될 예정이어서 우리 쌀과 외국 쌀의 정면대결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쌀 시장 개방으로 대표되는 농업 개방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한국일보는 개방농업 시대 우리 농업의 장기적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로 했다. 차근차근 경쟁력을 길러 온 지역 농가들의 성공 사례, 도시와 공생을 모색하는 농촌의 미래, 그리고 나름의 경쟁력으로 개방 파고를 이겨내고 있는 외국의 사례 등을 12회에 걸쳐 심층 보도한다.경기 안성시 공도읍 웅교리 유계형(48)씨 농가. 30톤짜리 사일로(쌀 저장고)가 텅 비어 있다. 논 17㏊(5만1,000평)를 경작하는 전업농의 창고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유씨가 올해 내내 땀 흘려 농사 지었다는 그 많던 쌀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의문은 공도읍 미곡종합처리장을 방문하자마자 이내 풀렸다. 유씨의 쌀 등 이 지역에서 생산된 쌀이 지역 브랜드인 ‘안성마춤쌀’이란 상표를 달고 부지런히 실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유씨는 올해 가마(40㎏)당 정부수매가보다 1,000원 비싼 5만9,000원에 2,500여가마를 전량 농협에 판매했다. 유씨의 저장고에 조금 남아 있는 쌀은 내년에 볍씨로 쓸 것과 네 식구가 먹을 양식뿐이었던 것이다. 정부의 쌀 수매량 축소로 각 읍·면·동마다 쿼터를 더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유씨는 어떻게 2,500여가마를 모두 판매할 수 있었을까.

"품질 고급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을 경작하는 비교적 젊은 전업농들이 모여 연구소를 만들어 토양, 미질 개선에 끊임없이 투자했습니다."

유씨는 매년 가을 호밀을 심고 이듬해 봄 논을 갈아엎는다. 호밀이 훌륭한 유기질 비료 역할을 하는 셈이다. 또 봄 가을 두 차례 토양질을 분석해 질소 인산 칼리 등 비료량을 최적화한다. 토양 산성도를 낮추기 위해 규산제도 투여한다. 벼가 마지막까지 광합성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가을에는 한 차례 영양제도 준다.

이렇게 지은 쌀 농사로 유씨는 올해 1억5,000여만원의 수매가에서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8,000만원을 남겼다. 12월 전국 농가들을 대상으로 한 ‘2004 고품질 쌀 유통·대책 평가’에서 유씨는 최우수 농가로 선정돼 내년에는 수매가를 더 높게 책정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 이천시 부발읍의 서종원(52)씨는 유씨보다 한결 느긋한 편이다. 부발읍 전 농가가 쌀을 가마당 6만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을 받고 지역 미곡처리장에 전량 판매했기 때문이다.

이천 쌀의 명성은 지난 10년간 기울인 품종 단일화 노력으로 얻어졌다. 서씨는 앞장서서 농가들과 농협을 설득, 소출은 비교적 낮더라도 품질이 뛰어난 추청으로 단일화했다. 품종이 단일화하니 밥맛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임금님표’ 이천 쌀은 순식간에 전국 소비자들로부터 최고 품질의 쌀로 인정받았다. 이 지역 농가들은 이제 토질 균일화와 함께 등급별로 쌀을 분리해 처리할 수 있도록 미곡처리장의 사일로를 다양화하는 시설 개선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이천 농민들도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서씨는 "이천쌀이 최고로 인정받지만 일본쌀이 들어오면 고급 쌀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불안한 심정으로 정부의 대응 방안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의무수입 물량이 8%로 확대되더라도 관세화(전면시장 개방)는 10년간 유예되는 만큼 쌀 재배면적 축소, 쌀 가격 하락 등 개방의 영향을 대처 가능한 수준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 국내 쌀의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다.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 김연규 박사는 "수차례 국내외 비교평가 결과 우리가 개발한 일품벼의 밥맛이 일본 고시히카리 품종보다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재 뒤처진 것으로 평가되는 수확 후 처리기술만 보완하면 국내 쌀의 경쟁력 확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 농림성의 연구 결과 쌀 품종을 1로 봤을 때 입지는 0.3, 시비 1.6, 건조 3.2, 저장이 11.8의 비중으로 밥맛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종이나 입지보다는 수확 후 건조, 저장 기술에 따라 밥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천쌀이 일등쌀로 올라선 것은 밤낮의 기온차가 적당한 중부지역이라는 이점 외에 품종 단일화, 미곡처리장 다양화 등의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며 "타 지역 쌀도 시비, 건조, 저장 기술을 개선한다면 얼마든지 일등쌀로 올라설 수 있다"고 말했다.

쌀의 품종과 입지에 대한 논쟁과 우려에서 벗어나 차근차근 기술 개선에 나선다면 쌀 시장 개방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쌀은 여전히 우리 농민의 희망이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