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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보법 처리 해 넘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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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보법 처리 해 넘기지 말라

입력
2004.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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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처리 문제로 열린우리당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힘을 얻는 듯 하던 협상론은 강경파의 거센 반발로 멈칫거리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여권 지도부 만찬에서 "오랫동안 우리사회에 군림해 온 국보법을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바꿀 수 있겠느냐. 산이 높으면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9월의 발언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그의 변화는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순방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절감했고, 개혁 조급증에서 벗어나 좀더 멀리 보게 되었다는 반가운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민주정치는 타협의 정치"라는 원론을 강조한 것은 4대입법 처리에서 여당이 좀더 유연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대통령의 ‘천천히, 차근차근히’라는 표현은 긴 호흡으로 개혁을 추진하자는 뜻일 것이다. 설마 이 시점에서 국보법 논란 등을 천천히 풀어가자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큰 일이다.

국보법 논란은 시간을 끌지 말고, 연내 타결을 목표로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가득 차 있는 국보법 피로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내년까지 이 소모적인 싸움을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국민의 뜻은 그 동안 실시한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나 있고, 여야가 각기 개정하거나 폐지하려는 안도 다 드러나 있다. 국민의 뜻을 새기며 조금씩만 양보하면 연내타결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나는 대체입법이 옳다고 생각한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개정이나 대체입법을 원하고 있다.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30% 정도다. 여러 조사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는 국보법이 존속한다 해도 그로 인한 인권침해의 위험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근거 없는 불안과 근거 있는 불안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보법 폐지를 고집하기 보다 개정이나 대체입법으로 독소조항을 제거하고 다음 기회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높은 산은 정복할 수도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 산이 대다수 국민의 불안이라면 마땅히 돌아가야 한다.

지난 23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4인대표 회담에서 ‘국보법 3대원칙’에 접근한 것은 환영할 만 하다. 인권침해 요소를 제거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고려하고, 안보공백과 국민적 불안을 없애야 한다는 3대 원칙은 바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여당은 국보법을 폐지해도 형법의 내란죄를 강화하면 안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대체입법으로도 3대 원칙을 반영할 수 있다면 굳이 폐지라는 강수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개혁 강박증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타협은 패배가 아니다. 과반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표로 밀어붙이는 대신 야당과의 협상에 나섰다면 그것이 바로 큰 정치다. 민심의 흐름을 존중하는 것 역시 개혁의 후퇴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발언에 따른 좀 더 확실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그는 국보법 폐지론에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 이제 와서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오랫동안 군림해 온 법을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바꿀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들린다.

대통령이 정말로 발상의 전환을 했다면 당의 강경한 개혁주의자들을 설득하고, 국보법 폐지보다는 대체입법이나 개정이 좋겠다는 생각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당이나 원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애매한 당정분리론에 숨어서는 안 된다.

국보법 논란이 해를 넘기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다해야 한다. 지리멸렬했던 2004년 정치를 국보법 타결로 산뜻하게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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