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를 경제회생의 기폭제로 삼겠다며 ‘벤처식’ 올인 정책을 내놓았다. 우선 금융·세제 지원 규모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중소·벤처 기업의 창업을 돕는 2조원 규모의 4개 펀드가 만들어지고 기술신용보증기금은 3년간 10조원의 보증을 제공한다. 양도소득세를 물지 않는 소액주주의 범위가 확대되고 코스닥 등록기업은 5년간 순이익의 30%를 사업손실준비금 명목의 손금으로 인정받는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투자액의 15%를 소득공제받는다.또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업체는 코스닥시장 진입이 한결 쉬워지는 반면 부실기업은 신속히 퇴출되도록 시장제도가 정비되고 선의의 실패 벤처인들을 위한 패자부활 프로그램도 도입된다. "장맛비에 흠뻑 젖은 나무를 태우려면 석유를 쏟아 부어야 한다"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최근 발언에서 예견되긴 했지만 벤처업계나 코스닥시장 관계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번 대책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로 더욱 위축될 내년 경기의 불씨를 되살리는 모멘텀을 벤처 활성화에서 찾은 정부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고위험-고수익을 좇는 벤처의 특성과, 돈 퍼붓기가 먼저 부각되는 정책 내용을 볼 때 1999~2000년의 벤처 광풍이 초래한 머니게임과 묻지마투자의 폐해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벤처업계는 "거품이 빠져 옥석이 가려진 기업만 살아남은 만큼 이번 처방은 벤처기업과 코스닥시장이 함께 상승발전하는 윈-윈 대책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나 돈만 보고 달려드는 날파리들을 제때 가려내는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정책이 훌륭하고 업계의 다짐이 거창해도 몇 마리의 올챙이만 날뛰면 물은 금방 흐려진다. 정부와 벤처업계는 제2의 벤처 붐이 제2의 벤처 거품을 낳는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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