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24일 벌집을 쑤셔 놓은 듯했다. 전날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 등 처리와 관련,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게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재채기’ 한번이 우리당의 ‘몸살’로 이어지는 꼴이었다. 9월초 노 대통령이 "국보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해 여당기류를 단번에 국보법 폐지로 몰아 갔던 것과 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노 대통령이 틈만 나면 강조했던 당정 분리론의 허상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국보법 연내폐지를 주장하는 강경파 의원들은 대통령 발언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우원식 김형주 의원 등은 "원만하게 잘하라는 원론적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혹해 하는 표정은 역력했다. 행여 대통령 언급이 온건론 확산을 부를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내에는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야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말이 나왔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한 초선 의원은 "국보법 등 문제는 당이 알아서 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자꾸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실질적 당정분리를 거듭 요구했다.
그러자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이날 "대통령의 언급은 한 평당원의 의견에 다름 아니다"며 "대통령의 언급과 상관없이 당이 알아서 4대법안 문제를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김종민 대변인도 "23일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당정분리에 따라 국회 운영과 전략은 전적으로 당에서 책임지고 대처하는 것이 옳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며 대통령이 지침을 내린 것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지만, 우리당 의원 대다수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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