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도 불안하고 취업도 잘 안 되는데 새해 운이나 물어보자" 새해를 앞두고 점집들이 호황이다. 크리스마스 특수조차 사라진 살인적인 불황 속에 불안한 미래로 내몰린 젊은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21일 저녁 서울 서교동 L오피스텔의 한 철학관 앞에서 만난 박모(31)씨는 "지난 가을 대학원을 그만두고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나이 때문에 원서조차 받아 주지 않는 곳이 태반"이라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일반 기업체는 물론 공사까지 가리지 않고 무려 40여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서른을 넘긴 문학도를 선뜻 뽑아주려는 곳은 없었다.
박씨는 "수입도 없는 주제에 복채 5만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혹시 새해에는 운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들렀다"고 말했다. 50대 중반의 남자가 컴퓨터를 이용해 사주를 풀어 주는 이 철학관 앞에는 20, 30대 젊은이 10여명이 복도까지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인터넷에까지 입 소문이 퍼진 A여대 앞의 한 사주카페도 젊은 여성들로 붐볐다. 학원 친구들과 함께 온 재수생 김모(19·여)씨는 "원서접수를 앞두고 어떤 학교, 어떤 학과를 지망해야 좋을지 물어보러 왔다"며 "손님이 많아서 2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설명은 30분도 채 듣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일부 테이블의 손님들은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온라인도 예외가 아니다. N포탈 사이트의 경우 최근 운세 관련 유료 콘텐츠 이용자수가 하루 평균 4만명에 달한다. 이 사이트 관계자는 "취업과 이직이 활발한 20, 30대 초반 네티즌들이 주 고객"이라며 "취업에 어려움이 더 큰 여성 네티즌의 비율이 7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올 겨울 호황 덕분에 역술인들은 기대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예전보다 훨씬 절박한 손님들의 문의에 진땀을 빼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15년째 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1)씨는 "아예 성적표와 배치표를 들고 와 ‘가’ ‘나’ ‘다’군 전형일자별로 학교와 학과를 골라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역술인 노모(37)씨도 "손님들 중 일부는 돈은 얼마라도 좋으니 합격 부적을 써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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