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크리스마스날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작가 트리스탄 차라가 파리에서 작고했다. 향년 67. 차라는 시인이기도 했고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평론가였고, 더 정확히는 문학운동가·예술운동가였다. 그가 이끈 예술운동은 ‘다다' 또는 ‘다다이슴'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다다이슴이 탄생한 것은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다. 차라는 그 때 취리히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 스무 살 먹은 학생은 ‘테라스'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시적 저항과 사회혁명을 일치시키는 예술운동을 출범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태어난 이 운동은 우선 전쟁에 반대했고, 그 전쟁을 낳은 사회조직에 반대했고, 그 사회조직이 사용하는 언어에 반대했다. 차라는 "새로운 예술가는 저항한다. 새로운 예술가는 설명적·상징적 복제를 그리는 게 아니라 돌이나 나무나 쇠로 직접 창조한다. 특급기관차 같은 새로운 예술가의 유기체는 순간적 감동을 싣고 모든 방향으로 향한다"고 선언했다.
예술운동 이름이자 그 운동의 기관지 제호이기도 했던 ‘다다'는 프랑스 유아어로 ‘말(馬)'을 뜻하지만, 차라가 이 말에 특별한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차라는 우연히 페이퍼나이프가 쓸려 들어간 사전의 페이지에서 이 말이 눈에 띄어 예술운동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정교한 이론보다는 격렬한 반체제 정서 위에 구축된 다다이슴은 곧 파리와 베를린 등 유럽의 주요 수도와 미국으로 번져나가며 한 시절의 조형예술과 문학·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잠시 협력하다 결별한 차라는 만년에 프랑스 공산당의 문예관을 좌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가 스탈린식 사회주의리얼리즘을 옹호하며 예술가들에게 전면적 사회·정치 참여를 촉구했을 때, 기성의 사회조직과 언어에 결렬하게 저항했던 다다이슴으로부터 그 교주의 자리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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