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귤을 보면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요즘은 사시사철 흔한 과일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그렇게 쉽게 먹지 못하던 과일이다.귤을 처음 맛본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다. 어느 날 부모님이 시골 집안 어른의 잔치에 참석하게 되어 이틀 동안 집을 비우게 되자 누나에게 "동생 잘 데리고 있으라"며 집을 나섰다. 부모님이 시골에 가시고 누나도 친구 집에 "방학숙제 하러 간다"며 나가자 나도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참 지나 아이들이 하나 둘 점심밥을 먹으러 간 뒤에야 할 수 없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집에 누나가 돌아와 있었다. 누나는 나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엌으로 불렀다. 부뚜막에 의자를 놓고 찬장 맨 위칸에서 무언가를 들고 내려왔다. 주황색에 군데군데 희끗희끗한 것이 묻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내밀면서 귤이라며 먹어 보라고 하였다. 물기가 조금 배어 나와 있었지만 호기심에 한번 보고는 얼른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살살 깨물었는데 그것이 톡톡 터지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온 입안에 퍼졌다. 신 맛 때문인지 턱까지 뻐근해졌지만 처음 느끼는 맛은 뭐라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친구 집에 방학숙제 하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내 주신 것을 동생에게 맛보이려 한쪽을 떼어 주머니 속에 넣어 온 것이었다. 마음이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에 누나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누나는 "맛있지?"하며 활짝 웃었다.
누나는 나보다 세 살이 많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 누나가 밉고 못마땅했는지 툭하면 싸움을 걸기 일쑤였다. 하지만 누나는 내가 달려들어도 긴 팔을 뻗어 내 얼굴을 잡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가만히 서 있을 뿐 나를 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내가 지쳐 그만두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누나가 지금은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누나의 마음을 처음 느끼게 해 주었던 그 귤 맛은 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장주현·서울 노원구 공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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