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왕’이라지만 어디서든 왕처럼 대접 받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지갑을 열기 전에 소비자는 분명 왕이다. 하지만 일단 값을 치르고 나면 처지는 뒤바뀐다. 구입한 물건의 교환, 환불에서 애프터 서비스(AS)에 이르기까지 소비자 뜻대로 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신을 ‘깐깐한 소비자’라고 자평하는 회사원 신동광(30)씨. 그는 최근 구입한 제품들의 환불, AS 등과 관련해 몇몇 업체들로부터 깨끗하게 항복을 받아냈다. 그는 시간과 공을 들여서라도 잘못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업체들이 좀 더 고객 입장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신씨의 사례를 통해 제대로 대접 받는 소비자가 되는 법을 알아보자.◆ 기록을 남겨라 = 신씨는 무엇보다 불만사항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을 것을 당부했다. 시간, 장소, 내용은 물론이고 담당자 이름, 소속을 기록하고, 문자메시지, 인터넷 화면 등 증거가 될만한 모든 것은 저장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
그는 지난해 가을 집에서 사용하던 컴퓨터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아 컴퓨터 회사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직원은 컴퓨터 본체를 열고 부품 중 하나를 뺐다가 다시 끼우라고 알려줬다. 신씨는 지시대로 했지만 컴퓨터는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AS 직원을 불렀다. 출장수리 직원이 컴퓨터를 수리하고 받아간 돈은 1만7,000원.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그는 다음날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본사의 대답은 "컴퓨터 본체를 열었기 때문에 임의 분해에 해당돼 무상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 신씨는 "콜센터 직원이 시킨 대로 한 것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그 직원이 누군지 이름을 대라"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신씨는 비슷한 상황을 설정, 콜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담원 중 본체를 열라고 지시한 3명의 이름을 기록한 뒤 다시 본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임자는 그때서야 사과와 함께 수리비를 환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 소비자단체를 활용하라 =‘믿는 구석’이 있는 소비자는 힘이 나기 마련. 신씨는 한국소비자보호원 등 소비자 단체를 적극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는 지난 5월 극장에 갔다가 콜라 무료 쿠폰과 함께 게임을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통신업체 무선인터넷을 이용했다.
나중에 무선인터넷 이용요금이 부과된 사실을 알게 된 신씨는 고객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왜 미리 고지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담당자는 "무료 게임에 콜라 쿠폰까지 받았으니 된 것 아니냐"며 무시했다.
신씨는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보원에 관련 민원을 접수했고, 놀란 업체 측은 신씨의 그 달 휴대폰 요금을 전액 감면해줬다. 소보원에 따르면 소비생활을 하다 문제가 생긴 부분은 언제든지 상담 또는 피해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상담 및 피해구제 신청은 전화, 서신, 팩스, 인터넷상담(www.cpb.or.kr), 직접방문 등 모두 가능하나 전화상담의 경우 통화량이 많아 가급적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흥분하지 말라 = 강하게 보이려면 목소리를 낮춰야 하는 법. 신씨는 마지막으로 "절대 먼저 흥분해서 욕설과 막말을 퍼붓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구입한 MP3 플레이어 이어폰의 고무가 자주 빠지고 리모콘이 고장 나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고객센터에 문의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담당직원은 "리모콘은 소모품이니 버린 뒤 새로 사고, 이어폰의 고무도 손님 귀가 이상해서 자꾸 빠지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그를 몰아부쳤다.
신씨는 목에까지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제품 AS와 관련된 회사 약관을 보자고 요청했다. 담당자는 당황한 듯 처음엔 보내준다고 했다가 이후 회사 기밀이니 보내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통화내용을 녹음한 신씨는 정식으로 소보원에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항의했고, 담당자는 리모콘과 이어폰을 즉각 교환해 주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롯데백화점 본점 소비자상담실 관계자는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소리를 치거나 무조건 ‘사장 불러내라’는 식으로 항의하는 고객, 사소한 일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거나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고객들을 상대하기가 가장 힘들다"며 "이런 고객들은 제대로 보상 받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 구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백화점에서 대접 받는 소비자가 되려면 ▦충동구매를 하지 말고 ▦영수증을 항상 보관하며 ▦기본적인 소비자 피해보상 규정을 숙지하고 ▦구매한 물건의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의 요령을 갖추라고 조언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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