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놓고 여야가 법사위에서 팽팽하게 맞서던 5일 오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당 소속 최연희 법사위원장을 회의석상으로 불렀다. 여당의 상정압박을 애써 피해왔던 최 위원장은 그 무렵부터 "감당하기 버겁다"고 하소연을 하던 터였다. 최 위원장은 박 대표를 보고서도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고 입을 뗐다. 순간 박 대표는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회의장엔 일순 정적이 감돌았고 참석자들은 기가 질려버렸다.박 대표가 ‘공주’에서 ‘철녀’로 이미?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영국의 대처 전 수상이 전범이다. 그는 지난 대표 경선 토론회에서도 "우리당에는 자신의 철학을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노력의 결정판이 21일 4자 회담이었다. 밀고 당기는 협상 경험이 일천했던 박 대표로선 정치력을 내보이는 첫 무대였다. 하지만 그는 벼랑 끝 승부 끝에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4자 회담 장 주변의 우리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박 대표에게 질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22일 밤 SBS TV토론에서 결혼 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표로서 일을 제대로 하려다 보니 다른 데 대해선 욕심이 없어졌고, 결혼생각은 파고들 여지도 없다"며 정치에 인생의 승부를 걸 뜻을 분명히 했다. 23일엔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한다면 하늘도 무심치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고 강단만 내세우는 게 아니다. 박 대표는 국보법 등 4대 법안 등 현안을 밤새워 공부한다고 한다. 한 측근은 "웬만한 법 조문은 다 외울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총선서 한나라당을 구해낼 때만 해도 그의 무기는 부모 후광을 바탕으로 한 대중적 인기와 동정심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강한 리더십을 표방한다. 여기에 식사정치로 대변되는 스킨십 강화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정체성, 국가보안법 사수로 이어지는 그의 강성 테마가 과연 한나라당의 행로로 합당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보수층에만 어필하는 리더십으론 당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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