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불법 정치자금의 파수꾼 역을 하고 있는 중앙선관위 직원 1,400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 1억 1,4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기탁한 것은 달라진 우리 정치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선관위 직원까지 앞장 서서 기부해야 할 만큼 지금 정치권이 극심한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초선 의원들의 고충은 막심하다. 연간 후원금 한도인 1억 5,000만원의 절반이라도 채운 의원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고 심지어 은행에서 대출 받아 근근히 버티는 의원도 50여명을 넘는 실정이다. 개정 정치자금법에 따라 기업체로부터는 후원금을 받을 수 없는데다 후원회조차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개정 정치자금법의 취지는 ‘소액 다수 모금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특히 10만원을 기부하면 세액공제를 통해 전액 돌려 받을 수 있는 데도 유권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의정활동이 돋보이는 장향숙 의원조차 ‘10만원 소액 기부’로 모은 후원금은 300만원도 안 된다. 한 의원은 "소액 기부를 위한 홍보물을 돌렸지만 봉투 값도 안 나온다"며 울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권력형 비리’가 아닌 ‘생계형 비리’가 나올 것이란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최소한 후원회라도 열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을 바꾸자는 하소연도 엄살만은 아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인들에게 깨끗한 정치를 하라고 무조건 윽박지를 수만은 없지 않느냐"며 "기부금 10만원까지는 그대로 환급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홍보하자는 취지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치활동에 정치자금이 필요한 게 현실인 이상 정치신인들이 ‘검은 돈’으로부터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도 유권자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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