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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경북 상주 조공제 밤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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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경북 상주 조공제 밤 숲

입력
2004.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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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시가지 동쪽 끝 부근인 상주여고 조금 못미처에 남북방향으로 돌과 흙을 다지고 돋구어 만든 ‘조공제(趙公堤)’라는 둑이 있으며 그 둑 위에는 크고 작은 밤나무들이 기다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밤 숲이 조성된 연유에 대해서는 상주 향토역사문헌 상산지(商山誌) 신증판(新增版, 1832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진다. ‘옛부터 주(州)의 동쪽 5리(里)에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읍터 서쪽근방 지네모양의 산이 침노하는 것 같아 서로 마주보는 곳에 밤나무를 심어 독기를 제거했다.’ 액운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기에 지네와 상극인 밤나무를 심었다는 것. 과연 서쪽 노악산 아래 흥암서원 뒷산의 가늘게 연속하여 구비치는 능선모양이 마치 거대한 지네가 꿈틀거리고 있는 듯 보인다.이 숲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함락된 상주성 탈환작전시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상산지 청대본(淸臺本, 1749년)에 의하면 ‘어두운 밤 화공(火攻)을 함에 있어 상주 4대 성문 가운데 동문에만 불길이 없고 군대소리도 없게 하였더니 왜적이 동문으로 나와 성동 밤 숲 쪽으로 달아났는데 이에 밤 숲에서 매복하고 있던 병정들이 적 수백 명을 몰살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밤 숲이 그 당시 이미 커다란 숲이 되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 숲 조성역사는 임진왜란 훨씬 이전으로 볼 수 있는데 대개 16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터도 남아있지 않지만 동방사(東方寺) ‘사실기(事實記)’에는 ‘상주들녘이 행주형(行舟形) 즉, 떠다니는 배의 형국인데다 남천과 북천의 수구가 허함으로 이를 충실히 하기 위하여 수구부근에 가짜로 산을 만들고 거기에 동방사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예로부터 상주사람들은 상주의 동쪽이 풍수적으로 허함에 대해 각별했었으며 지리적인 약점인 상습적인 수해를 막고자 꾸준히 노력해왔음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조공제 전체 길이는 300m 가량인데 상주여고 후문 진입로와 시가지를 동서로 관통하는 4차선의 중앙로가 개설되면서 남쪽부터 북쪽으로 대략 155m, 30m, 115m씩 3토막이 난 상태이다. 본래 둑 폭도 10~11m, 높이는 3m이었다고 하는데 2003년도에 정비복원을 하면서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할 목적으로 둑 둘레를 따라 지면을 돋구어 폭 2.5m가량의 보도를 내면서 폭이 크게 줄어 있으며 높이는 2m가량 된다.

이 숲을 다가가며 눈에 들어오는 좀 특이한 광경은 머리가 잘리고 껍질까지 벗겨진 채 굵은 줄기만 남은 죽은 나무가 군데군데 서있는 것이다. 일부러 남겨놓은 듯한데 그 연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낙엽 진 앙상한 큰 나무와 섞여있어 그런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둑 쌓기 당시 심은 나무로 짐작되는 것들로 두 아름이 넘는 것도 있지만 가슴높이 직경이 30㎝가 넘는 비교적 굵은 나무들 가운데 건강상태가 좋은 나무는 불과 몇 그루 밖에 없으며 대부분 줄기에 외과수술을 받은 모습들이다. 이는 이 숲이 이미 수명을 거의 다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다음 대를 이을 어린 후계수가 더러 눈에 띄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공제 주변 동쪽은 나지막한 집들이 둑을 따라 있고 서쪽 도심 쪽은 논이 접해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논 넘어 먼발치의 고층 아파트들이 이 곳 밤 숲까지 확장되어올 기세다. 그리되면 조공제 밤 숲은 아파트 사이에 묻혀 동네 놀이동산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2002년 7월, 조공제 밤 숲이 경상북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은 것으로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복원조성은 물론 문화재로서 존속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확보를 포함하여 보전과 보호를 위한 다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용호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yhjng@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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