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23일 제8대 대통령선거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졌다. 그 해 10월17일의 이른바 10월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로 들어선 파쇼체제의 첫 대통령선거였던 8대 대선은 선거라는 제도를 코미디로 만듦으로써 한국 정치사의 삽화를 풍성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물론 그 코미디는 슬프고 역겨운 코미디였다.제1공화국 이래 한국 대통령 선거는, 국민 직선이든 국회에서의 간선이든, 반대파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신정변으로 들어선 제4공화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런 보편적 규칙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박정희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관으로부터 6년의 새 임기를 부여받았는데, 그 기록이 놀랍다. 그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515명의 추천으로 단독 출마해, 전체 대의원 2,359명이 참석한 선거에서 2,357표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나머지 두 표도 반대표가 아니라 무효표였다. 사실상 100% 득표였다. 이 매력적인 기록은 1978년의 9대 대선에서도 되풀이됐다.
박정희가 자신을 위해 발명해낸 이 체육관 선거에는 편리한 점들이 많았다. 우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박정희는 김대중과 맞붙었던 1971년의 7대 대선 유세 과정에서 ‘다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는데, 그는 이 약속 하나만은 확실히 지켰다.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나서야 할 필요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말이다. 또 이 체육관 선거에는 그 전까지 그를 괴롭혀온 부정선거 시비가 일 염려도 없었다. 장충체육관에 모인 2천수백 명의 ‘통대'는 표를 매수하거나 바꿔치기 할 필요도 없고 지지를 강요할 필요도 없는 박정희의 순정 지지자들이었다. 투표 요령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대의원의 무효표 한둘 정도는 견딜 만했다. 그 때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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