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여느 해 못지않게 한국정치의 격동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해였다. 대충 꼽아봐도 국회의 대통령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기각결정, 총선에서의 과반수 여당탄생, 민주노동당의 국회입성, 자민련과 민주당의 몰락 등이 큰 사건들이다. 386세대의 대거입성이 보여주는 것처럼 국회물갈이도 할만큼 하지 않았는가.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분노가 아닐 수 없다. 정치는 ‘판도라상자’처럼 희망만 빼놓고 온갖 재앙이 날아다니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비리에 때묻은 정치인만 추방하면 품위있는 생산적 정치가 도래할 것처럼 믿었는데, 그게 아니다.
이곳 저곳에서 정치를 원망하는 저 소리를 들어보라. 귀를 막지만 않는다면 시장과 커피숍, 술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원망과 원성들이 들릴 것이다. 그 원망과 원성들은 ‘친노(親盧)’의 목소리도 ‘반노(反盧)’의 목소리도 아니다. 당파적인 것도 아니고 정략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일 뿐이다. 정치인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이나 솥단지를 내던지는 사람들은 현실정치를 저주하는 사람들이지 기대감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의회정치건 정당정치건, 상생 대신에 상쟁이 자리잡았고 이성적인 토론 대신에 독기가 서려있는 막말공방이 예사가 되었다. 여야가 이 정도로 이골이 나도록 싸웠다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도 있고 하니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상쟁의 정치’를 끝장낼 법도 한데, 도무지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힘이 모자라나, 시간이 모자라나. 지금 여야는 좁은 다리를 두고 서로 건너가려는 염소처럼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기세다. 여당으로서는 개혁으로 포장한 법안이니 양보할 수 없고 야당은 ‘분열법안’으로 낙인 찍었으니 후퇴할 수 없다.
하지만 한편 그 동안 여야의 극한대치라는 것도 하도 많이 보아온 터라 왜 하필 이번만이 사생결단의 싸움이 돼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여야가 싸울 때 보면 항상 자신들은 선이고 상대방은 악으로 치부해왔는데,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선과 악의 싸움이라면 물론 타협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과연 그런가.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광복 60주년이 되는 새해에는 희망을 말하고 ‘희망의 정치’를 이끌어 가야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증오와 갈등이 한국정치의 대명사가 돼야 하나. 우리가 ‘고도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희망의 정치’를 기다려야 한다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이미 평범한 많은 국민들이 삶에 지쳐있고 또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있다.
이 지쳐있는 서민들의 삶을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축구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아니면 일본과 중국에서 유행하는 한류열풍이 위안이 될 수 있겠는가. 서민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분일 터이다. 정치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않다.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는 시민들한테 표를 달라고 할 때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야 국회의원들은 왜 생업에 종사하는 서민들이 정치를 자신들에게 위임했는지 그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싸움에 싸움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정치는 ‘적극적 선’은 물론 아니지만, 심지어 ‘필요악’도 아니다. 영락없는 ‘절대악’에 불과하다. 서민들의 절박한 관심사를 떠나서 자신들끼리 판을 벌이는 ‘3류 정치’가 어떻게 희망의 정치가 될 수 있겠는가. 요즈음 겨울이 겨울같지 않아 혼란스러운데, 정치도 정치같지 않아 더욱 혼란스럽다. 언제쯤 한국정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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