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맨 아래쪽에 붙어 있지만 평균 두께 2,000m의 얼음 덩어리로 이뤄져 고도는 가장 높은 대륙. 모든 것이 흰색으로 덮여 있어 새들조차 눈 앞의 얼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가장 험한 바다에 둘러싸인 신비의 땅. 바로 남극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와 계절이 정 반대인 남극은 지금 여름이 한창이다. 그렇다고 만만히 봤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지금도 평균 온도가 섭씨 영하 20도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극한의 오지에 탐험가나 과학자가 아닌 민간인들이 도전한다.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여류 화가 강명희(56)씨, 사진가 정종원(30)씨, 고등학교 생물 교사 김현태(37) 이 경(29·여)씨 등 4명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극지 체험단’이라는 이름으로 내년 초 남극 세종기지를 방문, ‘눈과 얼음의 땅’ 탐사에 나설 예정이다.
◆ 새·식물 찾아 남극 가는 선생님들
"대학 시절 한 잡지에서 ‘도둑 갈매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하게 힘쓰다가도 하늘을 날 때면 흰 날개를 멋지게 펴는 그 모습에 크게 감동 받았죠. 이번 기회에 이 녀석을 직접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뜁니다."
각종 통신서비스와 전자우편 등에서 ‘도둑 갈매기’의 영문 표기인 ‘스쿠아(skua)’를 아이디로 사용한다는 충남 서산여고 교사 김현태씨의 마음은 享?남극에 닿아있다. 세계에서 날개 길이가 가장 긴 신천옹(앨버트로스), 남극과 북극을 오가는 용감한 철새 제비 갈매기, 그리고 펭귄 알과 다른 새들의 모이를 훔쳐 먹고 사는 얄미운 도둑 갈매기…. 이번 탐사에서 김씨의 임무는 그가 ‘녀석들’이라 부르는 남극 야생 새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펭귄밖에 없는 줄 알지만 사실 남극에는 눈에 안 띄는 작고 특이한 새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사진가도 참가하니까 이들을 찍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새 연구는 식물을 살피러 가는 이 경 선생님의 과제와도 맥이 닿아 있고요. 그 곳의 새들은 남극 이끼 같은 희귀 식물로 둥지를 짓거든요."
‘자기만의 이름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 아름다워서’ 야생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울산 학성고 교사 이 경씨는 "책에서만 보던 신비의 대륙 남극에 간다고 학생들이 너무 신기해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남극의 식물에 관한 자료를 얻을 곳은 세종기지 과학자들이 작성한 논문이 전부였어요. 일반인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사진과 자료를 얻어오고 싶네요. 학생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아요."
◆ 4명 모집, 100명 넘는 인원 몰려
‘극지 체험단’은 한국해양연구소 부설 극지연구소가 일반인들이 생소하게만 느끼는 남극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이달 초 뽑은 ‘남극 민간인 홍보대사’들이다. 내년 1월 2일 서울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등을 거쳐 푼타아레나스로 이동한 후 칠레 공군 비행기를 타고 남극으로 들어간다. 남극까지 가는데 걸리는 기간만 닷새,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더 길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이들을 이끌 단장은 극지연구소 대외협력실 정호성(46) 실장. 1987년부터 매년 여름(현지 계절·우리나라의 겨울) 남극을 찾아 그 곳이 ‘집보다 더 편하다’는 남극 탐험·연구의 베테랑이다. 남극 월동 경험만도 세 차례나 된다.
"칠레 우루과이 등 남미 국가들이 자국의 기지를 위해 띄우는 수송기에 편승하는 것이라 인원 제한은 물론 일정도 극히 한정돼 있습니다. 주 칠레 한국대사관이 칠레 공군청에 ‘활동 계획서’를 제출해 공식 요청하는 등 절차도 까다롭지요. 남극은 돈과 용기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일반인이 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4~5명을 모집한다는 탐사단 선발 공고가 나가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모했다. 그 중에는 인기 소설가 공지영씨도 있어 함께 떠날 계획이었으나 최근 허리 디스크에 걸려 일정을 포기했다.
◆ 강신성일씨 동생 화가 강명희씨도
재불화가 강명희씨는 10년 전 남극을 화폭에 담고 싶어 푼타아레나스까지 갔다가 끝내 남극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영화배우 강신성일씨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녀는 자연을 소재로 한 추상화를 그리는 유명 화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매일 집으로 꽃다발을 보낼 정도로 그녀의 열성 팬이다.
우리나라가 남극을 처음 개척한 1985년 탐험대를 이끌었던 월간 ‘산과 사람’ 발행인 홍석하씨의 뒤를 이어 남극을 찾는 이 잡지 소속 사진가 정종원씨는 평생 한번 얻기 힘든 기회를 만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35㎜ 수동 카메라 두개와 디지털 카메라 하나, 그 외에 중형 대형 카메라까지 장비 챙기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는 욕심에 마음이 설레네요. 남극은 여름에 20시간 동안 해가 떠있어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있다니 무척 다행입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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