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대표적인 적대관계라면 당연히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그런데 이 ‘원수’들끼리 중동지역에서 공동으로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는 ‘모험’을 시도하고 있다. 올 4월부터 전파 송출을 시작한 ‘온누리에 평화를(ALL FOR PEACE)’ 라디오 방송국이다. 팔레스타인 비정부기구 ‘빌라디’와 이스라엘측의 ‘이스라엘·아랍연구센터’에 참여하는 지식인과 기업인들이 아예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 현실부터 바꿔보고자 설립의 뜻을 모았다.방송국 건물은 동예루살렘, 송신기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에 설치돼 있다. 이스라엘 TV방송국 출신의 시몬 말카(37)와 팔레스타인 여성인 메이사 바란시 시니오라(28)가 공동 감독을 맡고 있다. 직원 14명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이 정확히 7명씩이다. 하루 21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은 히브리어와 아랍어, 영어로 방송된다. 최근 방송프로그램의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일일 접속자가 1만 명에 달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시니오라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랍노래 한 곡에 히브리노래 한 곡 식의 균형을 유지한다"며 "서로를 자극하는 선동적 언어는 철저히 배제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대상도 이스라엘 국회의원에서부터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단체인 하마스의 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두 총감독은 특히 지난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 소식을 공정한 톤으로 빠짐없이 다룬 점을 자랑스러워 한다.
물론 말카와 시니오라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미묘한 신경전을 피할 수 없는 게 인지상정. 그러나 두 사람은 이 방송이 양 국민과 특히 정치인들에게 서로 상대방의 주장과 입장을 이해토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방송국은 당장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 유럽연합으로부터 첫해 경비의 80%를 지원 받았으나 곧 바닥날 형편이다. 1년에 75만 달러에 달하는 운영비를 안정적으로 마련키 위해 두 총감독은 이달 초부터 뉴욕을 방문해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방송국이 얼마나 오래가겠냐는 회의론도 무성하지만 두 사람은 절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시니오라가 "내 아이들이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갖고 이스라엘인도 이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자, 말카가 "서로가 상대방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무르익은 뒤에야 이스라엘 TV로 복귀할 것"이라고 받았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