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의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추천 심사가 21일 일단락됐다. 그러나 유일하게 재허가 추천이 거부된 경인방송(iTV)의 후속 처리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등장한데다, 심사과정에서 숱한 문제점이 드러나 재허가 제도 전반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허가 제도 취지와 문제점
지상파를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에 대해 3년마다 방송위의 재허가 추천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의 재허가를 받도록 한 현행 제도는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과거에도 재허가 제도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통합방송법은 방송위의 추천절차 도입과 함께 개략적 심사기준과 추천 거부시 청문실시 등을 규정, 문제 있는 방송사를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2001년 실시된 첫 재허가에서는 막 출범한 방송위의 준비부족으로 실질심사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12개 사업자에 대해 이행각서 제출 등을 조건으로 재허가 추천하는데 그쳤다.
방송위는 이번 심사에 앞서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하고, 1차 심사에서 소명이 부족한 KBS SBS 등 9개사에 대해 2차 의견청취를 실시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막판에 추천 거부시 후속 절차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는 현행법의 맹점이 걸림돌로 부각됐고, 방송위는 결국 iTV에 대해 법에도 없는 후속 처리를 도맡아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 2004 재허가심사 성과와 한계
입법 미비와는 별개로, 방송위는 심사과정에서 ‘무능’과 ‘무소신’을 드러내 "손에 쥔 칼의 위력도 모른 채 마구 휘두른 꼴"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물론 성과도 없지 않다. iTV에 대한 방송사상 초유의 재허가 추천거부로 ‘사업권만 따면 영구히 방송할 수 있다’는 관행을 깬 것은 의미가 깊다. 심사 강화로 민영방송 스스로 사영화를 막는 내부장치를 마련하게 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SBS 노사는 노사 동수의 방송편성위원회 구성 등 14개 개혁과제에 합의했고, 제작 인사 등을 전횡해온 GTB 대주주도 ‘퇴출’ 위기에 놓이자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소유·경영 분리를 위한 제도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방송위는 심사과정 내내 ‘방송사 길들이기’ 등 논란에 휩싸였다. 부당한 정치공세도 없지 않았지만, 방송위는 심사의 세부사항에 대한 준비 부족과 어정쩡한 태도로 화를 자초했다. 1990년 허가 당시 약속한 ‘세전이익의 15% 사회환원’이 허가조건이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됐던 SBS가 대표적인 예다. 방송위는 사회환원 약속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평점을 매겼고,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추천을 보류하고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사실확인과정에서도 주먹구구식 행정이 되풀이됐다. 방송위는 결국 사회환원의 성격에 대해 ‘효력이 약한 암묵적 부관’이라는 모호한 결정을 내리고 과거 미납액 중 300억원 납부, 향후 매년 세전이익의 15% 사회환원 등 조건을 달아 재허가 추천을 했으나, 법적 논란이 많아 정보통신부의 최종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 제도 전반 개선 필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여당 방송법안은 재허가 추천이 거부되더라도 방송 중단을 막고 사업자가 방송설비 등을 처분할 수 있게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외에도 개선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윤식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언론학회 세미나에서 "이번 재허가 심사과정을 보면 사업자별 쟁점이 매우 다양해 도덕적 판단과 법률적 판단의 혼재로 방송위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소지가 많다"면서 "법에 재허가 결격사유를 상세히 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재허가 거부가 지배주주의 교체인지 전체 주주의 교체인지를 명확히 하고, 방송종사자의 고용승계, 정파를 막기 위한 장치 등 후속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심사기준 차별화 ▦허가유효기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 ▦심사기간 확대를 통한 심사 내실화 ▦재허가 심사의 사전조치로 허가조건 및 법률위반 사항에 대한 상시감시체계 도입 등이 개선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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