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21일 경인방송(iTV)에 대해 방송사상 최초의 재허가 추천 거부 결정을 내림에 따라 후속 처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방송위는 새 사업자 선정 여부 등 후속 절차를 ‘숙제’로 남겨두면서도, "iTV는 내년 1월1일부터 방송을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방송 중단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방송위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재허가 추천 거부 의미 = 방송위의 이번 결정은 요식행위에 그쳤던 재허가 심사를 강화, ‘일단 사업권만 따면 영구히 방송할 수 있다’는 관행을 깼다는데 의의가 있다. 방송위는 이날 오전까지도 ‘일정기간 결정 유예’ 등을 검토했으나, iTV측이 끝내 자구책을 내놓지 않자 ‘원칙’을 택했다.
이번 결정은 한마디로 iTV가 "방송을 계속할 재정적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 iTV는 누적손실이 878억원에 달하고, 총부채가 총자산을 67억원이나 초과해 증자만이 유일한 회생책이었다. 하지만 1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은 주식보유상한선을 넘어 투자에 한계가 있고 2대주주 대한제당은 파업을 이유로 추가투자를 거부, 증자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iTV의 재무구조 악화는 대주주의 투자기피와 부실경영이 주원인이지만, 1997년 허가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SBS와의 방송권역 중복 등 태생적 한계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일각에서는 방송위가 심사과정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결과적으로 대주주의 ‘배째라’식 버티기와 노조의 강경투쟁을 방치했다는 ‘방송위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 iTV 어떻게 되나 = 회사 자체를 청산하거나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 두 가지로 모아진다. iTV측은 이날 "조속한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 청산여부 등을 결정하겠다"고 밝혀 청산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간부가 결정에 앞서 "재무구조와 경영상태를 추천기준으로 삼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불만을 드러내 소송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 경우 iTV는 행정소송에 앞서 내년 1월1일 방송중단을 막는 가처분신청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신청이 받아들여져도 사실상 ‘사형선고’가 내려진 상황에서 방송광고를 유치하기 어렵고, 외주제작 등 협력사와 관계도 혼란에 빠질 것이 뻔해 파행방송이 불가피하다.
방송위가 내놓을 향후 대책으로는 이른 시일내 새 사업자를 선정, 방송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현행법에 후속절차에 대한 규정이 없어, iTV가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더라도 방송시설 양도 등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또 다른 특혜논란을 부를 수 있는 새 사업자 선정보다는 문화관광부가 추진 중인 외주전문채널로 활용하는 방안이 낫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경우 iTV 노조가 주장해온 ‘공익적 민영방송’ 취지에도 부합할 수 있다. 방송위는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일축했으나, "후속절차 마련을 위해 필요하다면 방송영상정책을 담당하는 문화부와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혀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 경인방송은 동양제철화학이 1대주주
1997년 10월 11일 ㈜동양화학(현재 동양제철화학)이 1대 주주로 참여, 인천 전역과 경기 일부 등을 권역으로 개국한 지상파 민영방송사. ‘인천방송’이란 이름에서 시작 2000년 3월 경인방송으로 변경했다.
출범 당시 SBS 프로그램을 송출해온 기존의 민방과 달리 방송시간 100%를 자체 편성으로 채웠다. ‘박찬호 메이저리그 중계’ 등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2003년 6월에는 라디오(FM)를 개국 24시간 방송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권역을 바탕으로 지상파 3사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7년간 누적손실이 872억원에 이르러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2004년 방송위원회가 계양산 DTV 중계소 허가를 추천하고 역외재전송을 허용하면서 숙제를 푸는 듯 했으나, 11월 이후 공익적 민영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시작한 노조와 이에 반대하는 경영진의 갈등으로 방송프로그램 제작이 마비, 영화 등으로 시간을 메우는 등 파행운영을 해왔다.
김대성기자 loveliy@hk.co.kr
■ 성유보 방송위원 문답 "대주주 개선책 못내놔"
성유보 방송위원은 21일 "한국방송에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면서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방송을 하게 하면 오히려 시청자 권익을 침해하고, 방송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허가 추천 거부 결정의 근거는.
"재정적 능력을 중점적으로 심사했다. 두차례 의견청취와 청문까지 거쳤으나, iTV 대주주와 경영진이 만족할 만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했다."
-iTV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
"주식회사 자체로는 (청산하지 않는 한) 존속하지만, 내년 1월1일부터는 TV방송을 할 수 없다."
-iTV의 주파수 처리 등 향후 절차는.
"빠른 시일 내에 후속 방침과 절차를 확정하겠다."
-법적 분쟁의 소지는 없나.
"이의가 있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방송법 규정에 따른 허가심사와 결정 자체에는 전혀 하자가 없다."
-해당 지역주민들의 시청권 침해에 대해서는.
"가장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다. 그러나 건실한 운영과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을 하지 못한다면, 시청자 권익보호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경인지역에 지역방송이 당분간 없는 상태를 감수하겠다는 뜻인가.
"후속 조치와 더불어 새롭게 논의해보아야 할 사안이다."
이희정기자
■ 인천지역 반응/ "인천시 중재 나서야" 주문
인천시민들은 경인방송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방송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원 김모(36)씨는 "그렇지 않아도 인천은 상대적으로 서울에 비해 공중파 방송의 수혜가 미약한 등 찬밥 대우를 받아왔는데 경인방송의 재허가 추천 거부 소식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인천을 대표하는 방송사의 존속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집 인천시 영상홍보계장은 "방송이나 전파는 특정사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모두 공유하는 것"이라며 "시와 문화단체 등의 주도로 대책위를 구성, 송출 금지라는 극단적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10일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경인방송의 운명이 좌우되는 만큼 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지기보다 현실적인 대책 제시가 절실하다"며 인천시가 중재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채훈 인천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방송사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에 대해 잘못된 경영 책임을 물어 퇴출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하지만 다른 주주 선정이 쉽지 않은 만큼 노조도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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