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은행에 연탄이 없다.’빈곤층 자원봉사단체인 원주밥상공동체가 독거노인 등 서민층에게 무료로 연탄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달 8일 세운 서울연탄은행의 첫 겨울나기가 만만치 않다. 경기불황 속에 서민뿐 아니라 인근 상인들까지 연탄을 찾는 데다가 하루 한정량을 무시한 채 차를 동원해 실어 나르는 ‘검은 양심’까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서울연탄은행. 원주밥상공동체 허기복(48) 대표가 주민들을 상대로 연탄은행 설립취지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원주밥상공동체가 한 달 반 동안 3만2,000장의 연탄을 대줬지만 연탄을 갖고 가는 이들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아 1주일 분이 3~4일 만에 바닥나는 상황이 이어지자 이를 해결해보려고 허 대표가 나선 것이다. 허 대표는 주민들에게 "연탄이 필요하면 누구든지 갖다 쓸 수 있지만 이곳이 서민층에게 온기를 전달하기 위해 설립됐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주밥상공동체에 따르면 서울연탄은행이 문을 열 때만 하더라도 100여 가구가 이곳을 이용했지만 현재는 200여 가구로 늘었다. 얼마 전부터 연탄난로를 설치해 이곳에서 연탄을 갖다 쓰고 있는 이모(71) 할머니는 "서울연탄은행이 생긴 뒤 기름보일러를 때지 않고 따로 연탄난로를 설치해 사용하는 집들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연탄난로를 놓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운영자들은 골치를 썩이고 있다.
주민 정모(35)씨는 "연탄을 못 땔 정도는 아닌 상인들이 연탄을 가져가는 경우도 많고 몇몇은 밤늦게 차를 대놓고 연탄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탄은행 운영을 맡고 있는 유모(49)씨는 "양심에 따라 장부에 적고 연탄을 가져가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어 씁쓸하다"며 "연탄 살 돈이 있는 사람들은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은행을 이용하지 말고 영세민들도 하루 5개로 정해진 한정량을 지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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