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의 피플소프트 인수, 존슨앤드존슨의 가이던트 매입, 노블에너지의 파티나 오일 &가스 합병, 시만텍의 베리타스소프트웨어 결합, 스프린트의 넥스텔 통합…. 지난주 세계 금융시장은 자고 일어나면 발표되는 대형 M&A 뉴스로 내내 들끓었다. 한 주 거래규모도 4년여만에 최고인 1,080억달러에 달했다. 올 한해 총 예상규모는 1조7,000억~8,000억원선. ‘세계는 지금 M&A 열풍’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모와 배신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고, 증시에서 기업사냥 혹은 주가조작의 수단으로 악용돼 온 까닭에 M&A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그다지 밝지 않다. Merger(합병)와 Acquisition(인수)을 뜻하는 이 용어가 특별한 이유나 배경 없이 앞뒤를 바꿔 ‘인수합병’으로 불리는 것도 結?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 더욱 고도화·세련화한 오늘날 기업세계에서 M&A는 생존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경영전략으로 자리잡았고 그 개념도 ‘탈취’보다 ‘상생’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여전히 문제가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거대한 자금력을 지닌 외국계 펀드들이 북치고 장구치며 대기업의 경영권을 투기무대로 삼는 수단으로 M&A가 이용되고 있다. 최근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가 올초 매입한 삼성물산 지분(5%)을 무기로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M&A를 시도하는 펀드를 지원하겠다"는 얘기를 퍼뜨린 후 주가가 급등하자 보유지분을 매각해 200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린 것은 대표적 예다. 모로코계 펀드로 알려진 소버린이 SK와 1년 넘게 갖가지 다툼을 거듭하며 시세차익에다 환차익까지 얹어 천문학적인 돈을 챙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이 같은 투기적 행태의 외국자본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주권’ 회복차원에서 제재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한다. 지분을 미끼로 과도한 배당이나 유상감자를 요구하고, 역정보를 통한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로 기업의 알맹이를 빼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외국 언론들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수주의’ 운운하며 비판하고, 국내 일부 전문가들도 역풍을 우려하며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지적하지만, 끊을 것은 확실히 끊어야 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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