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어둠이 깔리는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을 산책하다 ‘2004 소망트리 축제’ 작품들을 만났다. 광화문 일대 가로수를 장식한 루미나리 트리의 화려함에는 못 미치지만 갖가지 소망을 담은 출품작들이 세밑의 스산한 감상을 추스르게 해주었다. 특히 ‘고향 편지’라는 작품이 한동안 발길을 붙잡았다. 볏짚으로 한반도 모형을 만들고 꼬마전구로 장식한 ‘고향 편지’에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 학교’의 탈북청소년들이 고향을 그리며 만들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차가운 밤바람에 흔들리는 장식물들은 그들의 그리움이자 외로움인 듯했다.■ 셋넷 학교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 낙산 자락의 허름한 반지하 건물 25평에 자리하고 있다. 대학교수 학원강사 등 자원봉사 교사들이 치열한 경쟁사회에 면역되어 있지 않은 탈북 청소년들에게 자본주의 정글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사뿐사뿐 세상 밖으로"라는 교훈(校訓)은 탈북청소년들이 남한사회에서 당당하면서도 유연하게 살아가자는 다짐과 소망을 담고 있다.
■ 탈북청소년들은 탈북자 남한사회적응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하나둘 학교’를 거쳐 남한학교에 편입학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남한사회 적응의 하나 둘부터 가르친다는 ‘하나둘 학교’는 기초적인 오리엔테이션에 불과해 바로 남한학교에 보내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하나둘 교육의 다음 단계를 이어간다는 취지의 ‘셋넷 학교’ 등 대안학교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한계를 안고 있다. 셋넷 학교는 100여명의 후원자들이 보내는 월 평균 150만원으로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
■ 일반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적응도 문제지만 연 입국 규모가 200명이 넘는 탈북 청소년들의 적응을 돕는 근본대책이 시급하다. 일반 학교에 편입했다가 적응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부모와 떨어져 입국한 청소년들도 적지 않은데 평소 탈북자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던 사회 유력 인사들 가운데 연고 없는 탈북 청소년을 입양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모두가 탈북 청소년들을 돌아보는 세밑이 되었으면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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