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요? 엉망이죠.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드물어요.", "교육비 부담이 너무 커요. 정부가 유아 무상교육이다 뭐다 하지만 지금까지 뭘 해줬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한 공중파 방송이 내보낸 유아교육 관련 프로그램에서 학부모들이 쏟아낸 불만이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유아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아교육의 비중이 확대 됐지만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현장의 욕구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 천세영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윤지희 교육과 시민사회 공동대표 등 3인의 전문가들이 지난 15일 숙명여대에서 만나 원인과 해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유아교육을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키는 예산이 쥐고 있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윤지희 대표 = "유치원은 유아들에게 필수코스가 된지 오래입니다. 유아의 80%는 사립유치원에 다닙니다. 도시에는 공립유치원 시설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보내기 힘든 구조입니다. 학부모들의 사립유치원 비용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학부모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민하고 예산을 지원해야 하는 데도 뒷짐만 지고있어요."
천세영 교수 = "우리나라 교육은 해방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어떤 나라보다도 투자가 많습니다. 짧은 기간내에 초·중·고교는 양적인 측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낙후된 부분은 유아와 영아 교육입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유치원 비용 부담 때문이지요. 정부는 이런 실정을 과연 알고나 있는 지 궁금합니다. 예산 투자가 돼야 합니다."
송기창 교수 = "학교급별로 정부 돈이 제대로 배분되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초·중·고교 배분 비율이 대단히 높고 고등교육 지원은 미흡합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유아교육입니다. 이유는 정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통해 예산을 지출하면서 유아교육 부분 배정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지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은 초중고에만 쓰도록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유아교육 부분에 대한 지원이 당연히 뒤따라야 합니다. 특히 10명의 유아 중 8명이 다니는 사립유치원들은 돈을 주는 시도교육청의 관심에서 멀어져 국고지원으로 운영되는 공립유치원과 마찰을 빚고 있는 실정입니다."
윤대표 = "올해 우여곡절끝에 의원입법을 통해 유아교육법이 마련됐어요. 하지만 교육부는 시행령안에 유아교육 재정을 확보하는 근거를 만들었어야 했지만 아무것도 한일이 없는 것 같아요. 무상교육 예산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내 5세아 100% 무상교육’을 공약했지만 ‘50% 무상교육’으로 슬그머니 후퇴했어요."
천교수 = "유아교육법 제정 이후 1년 동안 허송세월을 한 꼴입니다. 유아교육을 위한 재정지원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한심한 상황이지요. 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도 유아교육 관련 예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요. 사립유치원 재정 보조로 자비 부담을 덜 것으로 기대했던 학부모는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송교수 = "유치원 대상 연령은 보통 3세부터 5세까지 입니다. 이들을 위한 정부의 유아교육 재정은 연간 5조원 정도 돼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간 돈은 공립유치원에 3,500억원, 사립유치원 400억원, 보육시설 6,000억원 등 1조원이 채 못됩니다. 적정 규모의 5분의 1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유치원만 따지면 확보돼야 할 예산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요. 이는 아이들이 출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치원이든 보육시설이든 유아의 65% 정도만 약간의 혜택을 받고 있어요. 나머지 35%는 교육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재원측면에서 볼 때 초중학교 의무교육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유아교육은 혜택의 사각지대에 처한 셈입니다."
윤대표 = "교육당국은 유아교육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사회와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유아교육법을 만들었지만 유아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청사진이 없어요. 정부는 유아교육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기를 낳지않고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문제는 유치원 지원 예산을 늘리면 해결되리라봅니다."
천교수 = "유아교육의 핵심은 재정입니다. 학부모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유치원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립유치원에서 교사 인건비 보조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도 이 부분 부담 역시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는 사정을 감안해 현명한 판단을 해야 옳습니다. 학부모들이 유치원을 외면하면 유아교육은 붕괴됩니다."
송교수 = "정부는 유치원에 제대로 지원도 하지 못하면서 연간 9,800억원을 유아교육과 보육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유아교육이 이루어지려면 최소한 연간 1조원이 재정이 필요합니다. 기존 재정한도 내에서는 불가능하지요. 정부는 유아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가령 현행 교육세의 일부를 확충하는 것 등입니다. 물론 국민적 동의가 전제돼야 하지요. 유아교육에 제대로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면 출산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경제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게 마련입니다."
윤대표 = "학부모 입장에서는 유치원에 들어가는 고비용에 비해 효과를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은 많이 내는데 실질적으로 유아교육에 투자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있어요. 유치원비의 상당부분이 교사 인건비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피해는 결국 원아들에게 돌아갑니다. 유치원이 양질의 교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배려해야 합니다."
천교수 = "유아의 80%가 사립유치원에 가는 것은 불가항력적 선택입니다. 국가에서는 공립유치원을 더 늘리겠다고 하지만 넌센스입니다. 공립유치원을 새로 짓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보다 있는 사립유치원을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공립 단설유치원을 세우겠다면서 사립유치원과 갈등을 유발하는 정부가 한심합니다."
송교수 = "현재 5세아 무상교육 비율인 30%는 너무 낮습니다. 더 높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산도 1조원 정도 확보하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아교육법을 재개정하거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도 재논의할 상황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립유치원 지원의 경우 법인화된 곳만 예산을 주는 게 어떠냐는 정부쪽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측은 법인 규정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보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대표 = "현재 처한 유아교육의 다른 문제 중 하나가 젊은 학부모들이 제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제자리를 잡지 못한 학부모들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젊은 학부모들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유아교육이 ‘이상무’라고 정부가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유치원 교육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립유치원이 공립과 함께 공교육 기관으로 굳건히 자리잡도록 해야 학부모의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덜어집니다."
정리 =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사진 =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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