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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김정일의 앙금과 정동영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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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김정일의 앙금과 정동영의 아픔

입력
2004.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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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북 사업 때문에 북경을 다녀온 한 기업인은 풀릴 듯 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의 속사정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감정적 앙금으로 설명했다. 자신의 분석이 아니라 북경에서 만난 북한 당국자들의 얘기를 전한 것이었다."북경에서 평양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워져서 북한 당국자에게 '지난번 베트남에서 탈북자 400명이 한국으로 온 것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그것은 드러난 이유이고 실제 김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못 믿기 때문’이라고 의외의 답을 했다. ‘왜 못 믿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대북 송금 특검을 받지 않았느냐. 그래서 정몽헌 회장도 죽고 박지원씨도 감옥에 갔다. 김 위원장도 모욕을 당했다’고 하더라. ‘그러고서 남북관계를 잘 하자고 하니 믿겠냐’는 말도 했다."

이 기업인의 말을 들었기에 15일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기념식에서 북측이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홀대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김 위원장의 응어리를 그런 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신은 그들만의 전유물인가. 그들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남측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사연들을 일일이 꺼낼 필요도 없다. 북측이 냉대했던 정동영 장관만해도 슬픈 사연이 있었다.

정 장관은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지난 시절의 숨은 얘기를 들었다. 한국전쟁 때인 1952년, 정 장관의 부친은 소설 남부군의 무대였던 전북 순창에서 빨치산에 호출을 당했다. 먼저 빨치산에 불려간 독립투사였던 사촌 동생은 다른 동네 사람들 수십명과 함께 학살당했고 이 사실을 모르고 가던 그도 자칫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평소 덕을 입은 사람들의 긴급한 연락으로 그는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네 아들을 모두 잃어야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전쟁이 끝난 후 정 장관이 태어났다. 부친이 과거를 얘기해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큰 아들인 줄 알았던 정 장관은 네 형이 있었다는 사실에 끝 모를 충격을 받았다. 그런 정 장관의 과거가 김 위원장의 앙금보다 작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는 북측에 분노를 표출한 적도, 과거를 언급한 적도 없다. 정 장관만 그런가. 한반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단의 아픔을 갖고 있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남북화합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아픔을 승화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김정일 위원장은 특검의 분노를, 노 대통령을 향한 불신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이쯤해서 훌훌 털어야 한다. 네 형을 잃은 정 장관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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