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패션쇼도 좀 더 현실적이어야하지않을까 생각했습니다."중견디자이너 오은환씨가 올해 오픈한 자신의 갤러리 ‘더 스페이스’에서 최근 트렁크쇼를 열었다. 트렁크쇼란 디자이너가 자신의 매장에서 직접 고객을 대상으로 신상품 소개 및 설명회 형식으로 여는 쇼를 말한다. 국내 최고의 패션디자이너그룹인 스파(SFAA) 회장을 역임한 정회원이면서 스파컬렉션에도 불참하고 연 이번 쇼는 오씨에게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스파컬렉션이 국내 패션문화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은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세계적인 패션트렌드가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시대에 제품수주도 이루어지지않는 컬렉션을 계속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고민은 늘 있었어요. 이젠 고객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 아닌가 싶어요."
청담동에 있는 더스페이스에서 열린 트렁크쇼에는 애초 100명만 초대한 고정고객이 입소문을 듣고 170여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쇼를 위한 옷이 아닌 그대로 입어도 손색이 없는 신상품들을 모델들이 차례로 소개하는 자리여서 고객들은 바로 눈앞에서 옷감의 질감이며 재단과 바느질 상태를 직접 확인해가며 쇼를 즐겼다. 맞춤복 디자이너인 서정기 이광희씨 등이 여는 살롱쇼와 비슷하지만 기성복 디자이너가 여는 쇼로는 이례적인 형태. 현장에서 바로 제품주문을 받지는 않았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앞으로 정례화할 것을 심각하게 검토중이라고 했다.
"해외 유명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늙어도 브랜드는 계속 젊음을 유지합니다. 끊임없는 브랜드 혁신과 젊은피 수혈이 비결이지요. 우리요? 디자이너가 나이들면 브랜드와 고객도 함께 나이를 먹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잊혀져요.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로 국내서도 영속성을 가진 브랜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자 결심했습니다. 이번 트렁크쇼는 그런 각오를 고객앞에서 다지는 자리였어요."
브랜드 ‘오은환’을 키우는데는 앞으로 두 자녀의 힘이 보태질 것같다. 일본서 안경디자이너로 활약중인 아들 유근우, 촉망받는 미디어아티스트인 딸 유혜진씨가 "한국에도 ‘디자인 명가’가 나올때가 됐다"며 어머니의 새출발을 적극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씨는 "분야는 달라도 다 같은 디자인의 길을 걷고있으니까 언젠가는 한데로 모이지않겠냐"고 은근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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