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44) 감독은 외계인 같은 존재였다. 그의 영화는 불편하고, 마초적이고, 여성 비하적이며, 폭력적이라고 여겨졌다. 칭찬하는 이는 소수였고, 대부분은 그를 비난했다. 김기덕 영화를 꼼꼼하게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그를 좀 이상한 사람 정도로 여겼다.더 솔직하게 말하면 공격의 대상은 인간 김기덕이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으며,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했고,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했다지만 정규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다. 공식적인 영화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어느날 ‘악어’(1996)라는 초저예산영화를 들고 나타난 특이한 이력의 그는 학벌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이 땅에서 늘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김기덕 감독은 그러나, 악의적 비난에 일일이 대꾸하는 대신 숨가쁘게 영화?찍어냈고 끊임없이 해외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늘 자신감에 차 있었다. 2001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언젠가는 ‘김기덕’이라는 고유명사를 가지고 영화사를 쓸 날도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9월에는 베니스영화제에서 ‘빈집’으로 감독상을 거푸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낸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악의적 비난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베를린영화제 수상 후 그는 "나의 살아온 시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베니스영화제 수상 후에도 "제 영화에 대한 비난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학교 가지 말고 기술자가 되라던 아버지, 날을 세우고 그를 공격했던 모든 이들이 오늘날의 김기덕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왜 김기덕 영화인가’에 대한 분석은 줄을 이었다. 그의 영화가 보여준 ‘구원’이라는 테마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서구 영화계의 입맛에 맞아 떨어졌다,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날것’의 느낌에서 원초적인 동양성을 발견했다 등등. 그가 의도적으로 국제영화제를 겨냥한 영화언어를 구사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영화를 대사로 이끌지 않고 이미지로만 끌고 간다. ‘나쁜 남자’의 주인공 한기(조재현)가 목소리를 잃은 후, 그의 영화에서는 대사가 사라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도 ‘사마리아’에서도, 화면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스파이크 리 감독은 "스토리가 아니라 이미지로 이끌어 가는 게 김기덕 영화의 매력"이라고 평했다.
잇단 수상 뒤에도 김기덕 감독은 여전히 주류보다는 비주류다. 그의 영화에 돈을 대려는 제작자는 적고, 보름 안에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곤 하는 빨리찍기 스타일 때문에 출연배우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기덕 감독은 "주류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하지만 내년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한국측 출품작을 놓고 ‘태극기 휘날리며’와 경쟁을 벌일 정도로 상업적 성공과 흥행에 대한 기대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기로에 서있다.
그는 요즘 권총을 주인공으로 하는 12번째 영화 ‘나는 살인을 위해 태어났다’를 준비하고 있다. 권총이 다섯 쌍의 남녀를 거치면서 자기가 행해야 할 복수에 대해 고민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제 수상으로 인정 받기보다는 나에 대한 오해가 풀렸으면 한다"고 말해왔던 김기덕 감독. 자신을 옥죄어온 편견과 오해에서 비로소 벗어났기에 그는 이제 자신의 영화세계를 더 깊고 넓게 보여주어야만 한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까지 눈을 크게 뜨고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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