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 하나를 만난다. 힌두교 사제와 이슬람 지도자와 신부가 토론을 하는 장면에서 이슬람 지도자는 당신네 종교는 한가지 기적도 보여주지 못한다며 핀잔을 주는 신부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우리 이슬람교인들은 존재의 핵심적인 기적에만 매달립니다. 새들이 날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곡식이 자라고… 우리에게는 이런 기적만으로 충분합니다."소인은 기이한 것에 놀라고, 군자는 평범한 것에 놀란다던가. 박성룡은 ‘나목(裸木)’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과목에 과물(果物)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 나를 경악(驚愕)케 하는 것은 없다.’ 과일나무에 과일이 달리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시인은 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째서 ‘없음’에서 ‘있음’이 가능한 것일까. 어째서 어떤 나무에는 사과가 달리는데 어떤 나무에는 감이 달리는 것일까. 시인은 과학자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일상의 현상에 의문을 품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의 일상은 신비와 경이로 가득하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그럴싸하게 생명현상을 설명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생멸을 거듭한다는 사실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곁에 있다는 사실, 우주의 한 조그마한 행성에서 그와 내가 만났다는 사실은 별똥이 내 집의 굴뚝 속으로 떨어지는 일만큼이나 신비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새들이 날고, 빗방울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이거 저거 눈여겨볼 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의 세계에 거주하는 것이 최선의 처세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세계에서 경이(驚異)를 읽을 필요가 있겠다. 흩날리는 함박눈을 우리가 기쁨의 표정으로 바라보듯이.
김보일 배문고 교사·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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