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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민심이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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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민심이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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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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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민심이 스승이라는 것을 새삼 깨우쳤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툭하면 민심을 내세우지만 그들은 민심이 얼마나 앞서 가고 있는지, 얼마나 사려 깊은지 잘 모르고 있다.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북한 노동당에 입당한 전력이 있다는 의혹으로 국회가 시끄러운 가운데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여야 모두에 교훈이 될 만하다. 국민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재판관이 무색할 정도의 명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 여론조사 결과를 다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갤럽이 한 신문의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6%는 "이철우 의원이 집권당 의원직을 수행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 의원이 노동당기와 김일성 김정일 사진 앞에서 입당 선서를 했다는 한나라당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35.7%만이 "의원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놀랍다.

운동권 출신의 과거 친북 활동 전력을 국민 대다수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운동권 젊은이들의 몸부림에 대한 이해와 함께 오늘의 남북 관계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날의 사상적 방황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만큼 국민이 성숙했다는 반가운 현상이다.

12년 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되어 4년간 옥고를 치렀던 이 의원의 노동당 가입 의혹이 "고문에 의해 조작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0.2%나 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50대 이상에서는 "노동당 입당이 사실일 것"이 36.2%로 "고문조작일 것" 33.2%보다 약간 높지만, 보수적인 연령층임을 감안할 때 놀랍도록 팽팽한 대립이다.

국민 대다수가 열린우리당의 주장에 동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론은 우리편이다’라고 환호한다면 경박한 짓이다. 열린우리당은 고무되기에 앞서 눈시울이 뜨거워져야 한다. 정부 수립 후 반세기에 걸쳐 철저하게 주입되고 강요되었던 반공 문화 속에 살아 온 국민들이 이 정도로 친북 경력을 감싸준다는 사실에 우선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이런 국민을 믿는다면 과거 고문 사실을 일제히 조사하겠다는 식의 공세도 재고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색깔 공세는 무참하게 패배한 것으로 드러났다. 57.7%가 "한나라당의 문제 제기는 적절치 못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도 다음 항목을 깊이 새겨봐야 한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보면 반대가 61%로 찬성 36.6%를 크게 앞서고 있다.

민심은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식이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다가 곧장 다리를 걸고 있다. 그러니 이번 사태에서 누구도 완전한 승자가 아니다. 민심은 보수와 진보를 함께 아우르면서 상식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과거 국보법의 폐해를 충분히 인식하고, 수많은 사건들이 고문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막상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당 의원의 과거 친북 활동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힐 만큼 앞서가는 사람들이 왜 국보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할까.

"과거에는 국보법을 악용하는 나쁜 권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나쁜 권력이 발 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원수 갚듯이 쫓기듯이 법을 없애서는 안된다. 그 법이 필요했던 이유가 지금도 존재하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독소조항은 고치면 된다"는 것이 반대하는 61%의 생각일 것이다.

여도 야도 겸허하게 민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보법을 폐지하고 말겠다는 집착과 국보법을 폐지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이 서로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싸움은 국민의 인권을 위한 대결도 아니고, 진정한 승자가 나올 수 있는 대결도 아니다. 명분 없는 상처 투성이의 싸움을 끝내고 민심의 너그러움, 의젓함, 상식과 균형을 배워야 한다.

국민은 지도층의 머리 위에 앉아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아전인수로 민심을 해석해서는 안된다. 민심은 때로는 너그럽지만 참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무섭게 폭발하게 된다. 민심이 스승이다. 국민의 상식에서 배워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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