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습만화 봇물 = 최근 2, 3년 새 어린이를 겨냥한 학습만화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와 과학상식 만화 ‘살아남기’ 시리즈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일으킨 돌풍이 회오리바람처럼 출판시장을 휩쓸고 있다. 역사를 다룬 게 압도적으로 많고, 과학 상식이나 세계의 문화, 한자 공부 등이 그 뒤를 이으며 최근에는 경제의 개념과 철학을 일러주는 학습만화도 등장했다.학습만화가 아동출판의 효자 종목으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일반 단행본에 주력해온 메이저 출판사들도 줄줄이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올해 학습만화 시장은 지난해만 못하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살아남기’ 시리즈조차 올 들어서는 판매량이 30% 정도 떨어졌다. 물론 대박도 있다. 손오공의 모험 이야기로 한자를 배우게 구성된 ‘마법천자문’ 시리즈다. 지난해 여름 첫 권이 나온 이래 한자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과 맞물려 최근 제 7권을 내면서 판매량 200만부를 돌파했다.
하지만, 그 밖의 학습만화는 꽤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책도 시장에서는 그리 재미를 못 보았다. 많이 팔린 책만 계속 팔리고 나머지는 저 아래로 축 쳐진 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 같으면 1만부는 나가던 것이 요즘은 3,000부도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불황 탓도 있지만, 대박의 아류를 양산하는 안이함, 너도나도 뛰어들어 난립한 데 따른 시장의 과포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베스트셀러 학습만화 읽기가 유행처럼 되어버린 아이들 사이 또래문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학습만화 시장의 이러한 기류는 책을 고르는 부모들에게 더욱 세심한 안목을 요구하고 있다. 많이 팔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책이라고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고, 좋은 책인데 묻힌 것도 있기 때문이다. 만화류는 옥석을 가리고 경중을 따져 독자의 선택을 돕는 믿을 만한 기관이나 단체도 거의 없다 보니 부모의 역할이 그만큼 무겁다고 할 수 있다.
◆ 어떻게 고르고 읽힐 것인가 = 학습만화를 사는 부모들은 아이가 부담 없이 보면서 공부에 도움도 되니 썩 괜찮은 선택이라고 믿는다. 아이들도 별 거부감이 없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읽고 나면 갑자기 유식해지기도 한다.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은 아이가 신들의 복잡한 계보를 줄줄이 꿰고 신화 이야기에 훤해진 모습에 부모들은 뿌듯함을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 ‘학습만화는 독’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는 만화에 빠진 아이는 뭐든지 술렁술렁 만화로만 보려들고 글이 많거나 어려운 책을 멀리 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 그리하여 아는 건 많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모자란 헛똑똑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만화책도 책이고, 학습만화의 장점도 분명하다. 학습만화는 독이 아니라 ‘당의정’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일반 단행본보다 더 튼실하고 깊이있는, 진지한 독서에 손색이 없는 학습만화도 있다. 따라서 문제는 선택이고 지도이다. ‘고상한’ 만화를 권하려는 부모와 무조건 재미부터 찾는 아이의 선택이 충돌할 때, 부모들은 난감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현명하다. 아이의 호기심을 계속 발전시켜 주기만 하면 스스로 좋은 책을 골라낸다. 그 때까지 부모는 눈 밝은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거나 잡다한 지식을 조악하게 나열한 학습만화는 피한다. 학습효과가 거의 없고 때로는 안 보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다루는 학습만화는 더욱 조심스럽게 고를 필요가 있다. 사실에 입각한 균형잡힌 시각 없이 만든 책은 왜곡된 역사의식이나 선입견을 심어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학습만화로 책과 사귄 아이가 좀 더 본격적인 독서로 나가도록 이끌라고 권한다. 예컨대 만화 삼국지를 읽고 나면 동화판이나 소설 삼국지를 쥐어주는 것이다. 학습만화로 닻을 올려 아이 스스로 더 넓고 깊은 책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도록.
오미환기자 mhoh@hk.co.kr
■ 학습만화 어떤 것이 있나
▲ 만화 조선왕조 실록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발행
흥미거리 이야기 중심으로 되어있던 기존 어린이 역사만화를 뛰어넘어 ‘정사’를 다룬 역작이다. 재미있고 내용이 충실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역사의식이 살아있다. 2003년 만화대상을 받았고, 교사들이 학급문고로 권하는 양서다. 어른이 정독해도 좋다. 20권으로 기획되어 4권 세종·문종편까지 나왔다.
▲ 만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원작, 윤종배 글, 이은홍 그림, 휴머니스트 발행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전체 5권 중 제 3권(조선 건국~조선 후기)까지 나왔다. 교보문고가 만화책으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 겨레의 인걸 100인
윤승운 글·그림, 산하 발행
인물로 보는 우리 역사 이야기. 1권 ‘한길을 걸은 명인들’, 2권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들’이 나왔다. 그림이 익살스럽다. 각 인물의 생애와 업적 뿐 아니라 사람 됨됨이와 숨은 노력까지 보여주어 감동을 더한다.
▲ 교과서와 함께 읽는 우리 신라사/고구려사/백제사
정재홍 글·그림, 김용만 감수, 주니어김영사 발행
삼국의 역사를 단숨에 익히는 시리즈. 각 2권으로 되어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토대로 구성했다. ‘알고나면 역사박사’ ‘흥미진진 역사추리’ ‘이야기 주머니’ 등 정보코너도 아기자기하다.
▲ 살아남기 시리즈
최덕희·코믹콤 글, 문정후 등 그림, 아이세움 발행
초등학생 필독서처럼 되어버린 인기 시리즈. 1권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부터 11권 ‘지진에서 살아남기’까지 나왔다. 위험한 자연환경이나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인공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과학상식을 배우게 된다. 기승전결을 갖춘 모험담 형식의 코믹만화여서 빠져들며 읽게 된다. 중국과 대만에도 수출되어 대만에서는 아동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 포켓포켓 우주여행
임정수 글·그림, 아이디니 발행
지구 소년 솔이, 외계인 소녀가 고향 별에 돌아갈 수 있도록 우주로켓을 만들다. 물리학도에서 만화가로 변신한 작가의 작품답게 우주과학과 로켓의 원리를 정확하고 재미있게 설명, 좋은 만화라고 입소문이 자자한 책이다.
▲ 단숨에 깨치는 과학상식
김석천·김석호 글, 김석천 그림, 웅진닷컴 발행
어린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풀어주는 과학상식 시리즈. 1권 공룡, 2권 우주, 3권 발명발견, 4권 음식건강, 5권 과학실험 편이 나왔다. 토막토막 엮었지만 짜임새 있고 재미있다.
▲ 마법천자문
시리얼 글·그림, 아울북 발행
삼성경제연구소가 ‘싸이월드’ ‘욘사마’ 등과 함께 올해의 히트상품 8위로 꼽은 화제작으로 7권까지 나왔다. 여러 요괴들을 만나 대결하는 손오공의 모험을 따라가며 한자를 배운다. 각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일러주고 그 글자가 들어간 단어를 소개한다. 한자를 순서대로 써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며, 권마다 한자놀이 카드도 들어있다.
▲ 우와~한자가 몸짓을 하네
정춘수 글, 박준상 그림, 부키 발행
초등학생 ‘난이’와 ‘누누’, 한자를 가르쳐주는 ‘지에’가 생활 주변에서 한자를 찾아내고 알아가는 이야기. 한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힌 어른용 한자학습서 ‘한자 오디세이’에서 쉬운 한자만 골라 만화로 엮었다.
▲ 청학동 고사성어
김봉곤 지음, 김정진 그림, 두산동아
청학동 김봉곤 훈장이 고사성어를 가르쳐준다. 먼저 만화로 보여주고, 각 고사성어의 한자 쓰기, 해설, 읽는 소리, 유래를 이야기해준다. ‘결초보은’부터 ‘환골탈태’까지 모두 50개의 고사성어를 소개한다.
▲ 만화 열세 살 키라 1~3
보도 섀퍼 원작, 구명서 글, 미디어러쉬 그림, 을파소
경제동화 붐을 일으킨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의 후속편을 만화로 만들었다. 경제 개념을 설명하는 것으로 출발해 돈의 문제,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인격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원작의 세계적 인기와 호평은 단순히 ‘부자 되기’가 아니라 경제의 핵심개념과 철학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다룬 덕분이다.
▲ 땡땡의 모험(전 24권)
에르제 글·그림, 류현진·이영목 옮김, 솔출판사 발행
벨기에 작가 에르제(1907~1983)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걸작.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최고의 교양만화로 꼽히는 세계적 고전이다. 소년 탐방기자 땡땡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겪는 모험담으로, 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큼 20세기의 역사와 각지의 문화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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